"1961년에 초판이 나온 책으로 선보인 지 48년이 됐지만 홀로코스트 연구에서 이 책을 능가하는 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이지만 읽어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없지요. 학술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별처럼 빛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라울 힐베르크 지음ㆍ전2권)의 번역자인 김학이(48) 동아대 사학과 교수가 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1992년. 독일 보쿰대에서 바이마르공화국의 경제정책에 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쓴 직후였다."홀로코스트를 이런 식으로도 꿰뚫어볼 수 있구나" 경탄하며 번역할 생각을 했지만 "1,338페이지에 달하는 원서의 방대한 분량에 그때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홀로코스트,>
그가 다시 책을 꺼내든 것은 10년도 더 지난 2003년께. 국내에서 한국전쟁기의 양민 학살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활발해진 시점이었고 정부`차원의 위원회 출범도 논의되는 등 사회적인 분위기도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홀로코스트에 관한 서구의 연구에 관심이 갔지만 국내에 번역된 책들은 학문적 정교함이 부족했다. "의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는 그는 2004년 여름 번역에 뛰어들었고 꼬박 4년이 걸려 원고지 1만 1,342매 분량으로 완역했다.
1990년대 세계 역사학계에서는 홀로코스트가 나치 지도부의 의지로 진행됐다는'의도론'과, 지도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발생했다는 '구조론'이 맞서는 큰 논쟁이 벌어졌다. 이 책은 이미 그 30년 전에 두 가지 관점을 아울러 홀로코스트를'과정'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랄만한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나치는 유대인에 대한 절멸의 의지는 없고 억압하려는 의지만 있었지만, 억압 의지가 진행되는 가운데 절멸이라는 결과가 빚어졌기 때문에 비극적이라 생각한다"는 김 교수는 "홀로코스트는 우리의 역사는 아니지만 근대인이라면 마땅히 성찰해야 할 보편사적 사건이며, 부정적 의미에서 인류문화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며 책의 일독을 권했다.
김 교수는 한국외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1년 반 정도 코리아타임스에서 신문기자로 일할 때 많은 역사책을 읽었다고 했다. "삶에 관한 근본 질문을 역사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구나"라는 자각을 했고 역사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 그는 이 책을 죽음의 역사에서 삶의 역사를 읽도록 하는 책이라고 요약했다. "책을 번역하며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도 삶의 외양과 인간적인 정서를 유지하려 했던 유대인들의 모습에 가장 감동받았습니다. 그 부분을 짚어냄으로써 인간에 대한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심사평/ 원고지 1만 매 넘는 '번역의 공력' 상찬
번역 부문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소감은 "참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번역도 이제는 하나의 문화, 하나의 산업이라고 해도 될 만큼 양적, 질적으로 풍요로웠다. 출판인들의 의지와 역자들의 노고가 아름답고 고맙다.
심사위원들은 원저의 가치, 번역의 품질, 책의 시의성에 주안점을 두었고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를 올해의 수상작으로 뽑았다. 500만 명이 학살당한 이 참극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특히 주목한 것은 파시즘의 기제가 어떻게 작동했는가, 그리고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독재의 망령'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총 원고지 1만 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무난하게 번역해낸 역자의 공력도 상찬할 만하다. 홀로코스트,>
김석희ㆍ번역가
사진 이성덕기자 s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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