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솔로이스트'는 정신분열병을 앓는 천재 음악가 나다니엘과 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힘쓰는 LA타임스 기자 스티브의 우정을 그렸다. 2002년 개봉한 영화 '뷰티플 마인드'도 이 병을 앓는 천재 수학자 존 내쉬 일생을 다뤄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정신분열병은 '귀신들린 병' 등으로 불리며 천형(天刑) 같은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을 앓은 사람은 정상적 삶을 회복할 수 없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 속의 나다니엘과 내쉬가 그렇듯 정신분열병 환자의 지적 능력은 일반인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범죄율도 일반인보다 훨씬 낮다(14분의 1). 그래서 잘못된 편견에 맞서 싸운 천재 음악가의 이야기는 더 감동을 준다.
최근 정신분열병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으려고 병명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대한정신분열증학회(이사장 권준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내년 상반기 병명을 바꾸기 위해 정신이완증 등 10여 가지 새로운 질병 이름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정신분열병에 대한 오해를 짚어 본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희귀병?(X)
100명에 1명꼴로 생기는 병으로 친구와 친척을 찾아보면 주변에서 한두 명씩 앓고 있는 질환이다. 다만 알려지기를 꺼려 쉬쉬하는 바람에 잘 알지 못할 뿐이다. 청소년기에 주로 발병하는데 정확한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한국에는 5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치료받는 환자는 60%에 불과하다.
폭력적이고 범죄자가 많다?(X)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어떤 연구에서도 정신분열병 환자가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1960년대 영국 미국 등에서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낮다는 보고가 있다.
한국에서도 몇몇 연구가 진행됐는데 그 결과가 외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용식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대부분 정신분열병 환자가 내성적이고, 부끄럼을 많이 타며, 치료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성찰하도록 교육받아 일반인보다 훨씬 온순하다"고 말했다. 요즘 범죄자, 특히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를 가진 범죄자의 정신질환 가능성이 정신분열병과 혼동돼 범죄 성향이 많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사이코패스와 정신분열병은 엄연히 다른 병이다.
정신분열병은 유전된다?(△)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부모가 정신분열병을 앓는다고 자녀가 반드시 그 병을 앓는 것은 아니다. 유적적으로 가능성이 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관리를 잘하면 고혈압 유전 인자를 가진 사람도 심혈관 장애 없이 살아가듯이 스트레스 등 환경 요인을 잘 조절하면 발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적 능력이 정상인보다 떨어진다?(X)
그렇지 않다. 정신지체와 같이 지적 능력이 정상인보다 떨어지는 질병은 대개 선천적이다. 하지만 정신분열병은 후천적이고 사춘기 이후 발병하므로 지적 능력은 일반인과 비슷하다. 굳이 내쉬 같은 천재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실제로 발병 이후 대학을 진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료제를 평생 먹어야 된다?(X)
약을 오랫동안 먹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꼭 평생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제가 발달해 약을 먹다 끊을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약 복용을 중단하는 것이 재발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꼭 정신과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
임신하면 약을 먹지 말아야 한다?(△)
임신 중에는 약 먹는 것을 삼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신분열병 치료제라고 다른 약보다 기형아출산 가능성이 현저히 높은 것은 아니다. 50년 전에 개발된 할돌의 경우 기형아 출산 가능성이 두통약 펜잘이나 아스피린 등과 비슷하다. 오히려 다른 병에 쓰는 약보다 안전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임신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며 "정신분열병 약이 특별히 문제 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건강한 아이를 낳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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