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자율, 경쟁, 효율.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의 핵심 키워드들이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시했던 국정운영의 원칙도 '자율과 경쟁'이었다.
그런데 요즘 경제계에선 "MB노믹스가 변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시장기능을 억제하고 자율과 경쟁을 제한하는 듯한, 때론 형평성을 더 강조하는 듯한 정책들이 이어지는 탓이다.
영리의료법인 문제는 MB노믹스의 실체 논란을 촉발시킬 수 있는 상징적 사례. 이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추진을 검토할 과제인 것은 맞지만 충분히 의견이 수렴되고 여론설득이 된 후에 정책이 추진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16일 전했다.
물론 청와대는 "(기획재정부나 보건복지가족부 중) 한 쪽 편을 든 것이 아니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사실상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반대하는 복지부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리의료법인은 자율과 규제, 효율과 형평의 가치가 정면 충돌하는 아주 예민한 사안이다. 그런 만큼 청와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현 시점에서의 MB노믹스 실체는 다르게 규정될 수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영리의료법인 도입은 시장과 경쟁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경제철학과 가장 잘 부합하는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청와대가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제동을 건 것은, 이유가 무엇이든 본래의 MB노믹스와는 분명 배치되는 태도라는 평가다.
'MB노믹스가 변했다'는 지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업형슈퍼마켓(SSM)이나 분양가상한제 이슈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정책들을 보면 시장기능을 상당부분 제한하려 한다는 점에서 MB노믹스가 좀 바뀌었다는 느낌이 든다"이라고 평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도"예상치 못했던 대형 악재들이 터지고 세종시, 4대강 등 굵직한 현안들이 대두하다 보니 서민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정책들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후퇴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물론 평가는 다르다. 재계 등 일각에선 "지난 정부보다 더 반(反)시장적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고 불평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대통령이 서민들을 보듬고 끌어안는 것은 당연히 가야 할 방향"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MB노믹스 자체가 모호해진 것은 분명하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MB노믹스는 이제 어정쩡한 상태가 돼 버렸고, 그러다 보니 정책간 방향성도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대로 가면 정부 정책기조 논란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정책의 일관성과 국민적 신뢰확보를 위해서라도 MB노믹스의 지향점이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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