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이 풍족해야 문화가 꽃핀다는 말대로라면, 올 한 해 문화계의 얼굴은 우울했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는 죽지 않았다. 경기 침체도, 실망스런 정치도, 어수선한 사회도 문화 고유의 탄력과 창의성을 꺾지는 못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수확도 많았던 올 한 해 문화계를 돌아본다.
2009년 방송가는 미디어법 관련 세 차례 파업과 방송사 사장 교체 등으로 순탄치 않은 한 해를 보냈다. 내년 종합편성 채널 등장을 앞두고 미디어 환경도 급변했다. SBS '찬란한 유산', MBC '선덕여왕', KBS '아이리스' 등 드라마 열풍 속에 탤런트 장자연의 자살 등 안타까운 소식도 이어졌다.
방송사 수장 교체, 미디어 환경 급변
KBS MBC SBS가 미디어법 통과를 앞두고 총파업과 부분파업을 진행해 프로그램 제작에 차질이 빚어졌다. 특히 KBS와 MBC는 사장 교체 여부를 두고 홍역을 치렀다. 이병순 전 사장 후임으로 지난달 24일 취임한 김인규 KBS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KBS노조 등으로부터 퇴진을 요구받았다. 엄기영 MBC 사장은 간부 7명과 함께 7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일괄 사표를 제출했지만, 10일 사표가 반려돼 유임됐다.
10월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 기각 결정으로 신문과 대기업 등의 방송 진출이 허용되면서 방송계의 지각 변동이 예고된 한 해이기도 하다. 내년 등장할 종합편성 채널의 사업자 수, 민영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 대행사)의 도입 방식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소식도 잇따랐다. 신인 탤런트 장자연은 성 상납을 강요 받았다는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파문을 일으켰다. 중견 탤런트 여운계가 폐암으로, 영화배우 장진영은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고 최진실 유골함 절도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 '선덕여왕'
한국일보가 방송국 드라마 관계자, 드라마제작사협회, 대중문화 평론가, 방송작가협회 등 한국 전문가 1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올해 최고의 TV 드라마로 MBC '선덕여왕'(40점)이 1위를 차지했다. 순위는 전문가들이 각각 5편을 골라 최고 5점부터 최저 1점까지 평점을 매겨 합산했다. (표 참조)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국 최초 여왕의 일대기를 다룬 '선덕여왕'은 탄탄한 대본과 뛰어난 연출, 미실 역의 고현정 등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지면서 시청률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선덕여왕'의 인기에 밀려 같은 시간대 드라마들은 3~5%의 낮은 시청률에 머물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사극의 최고 정점을 보여줬다"(정덕현ㆍ대중문화 평론가), "재미와 구성을 모두 갖춘 데다 폭발적인 호응까지 이끌어냈다"(임동호 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국장), "대본, 연출, 연기의 삼 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작품"(이은규 한국TV드라마협회 회장)이라고 호평했다.
200억원의 제작비, 이병헌 김태희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숱한 화제를 뿌린 KBS 2 '아이리스'가 2위(27점)를 기록했다. 3위는 MBC '내조의 여왕', 4위는 SBS '찬란한 유산', 5위는 KBS 2 '꽃보다 남자'순으로 나타났다. 순위에 들진 않았지만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법정드라마인 KBS 2 '파트너'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의 평가와 달리 시청률 집계로는 KBS 1 '너는 내 운명'이 42.5%로 1위를 차지했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14일까지 전국 2,350가구를 대상으로 분석한 평균 시청률을 집계한 결과다. 그 다음이 '선덕여왕'(33.9%), SBS '아내의 유혹'(32.1%), '찬란한 유산'(31.5%), '아이리스'(27.8%) 순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해 주신 분들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 김승수(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상임이사) 김영섭(SBS 드라마 기획CP) 김태원(CJ미디어 드라마 국장) 맹정호(한국연예제작자협회 이사) 이은규(한국TV드라마PD협회 회장) 이응진(KBS 드라마 국장) 임동호(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국장) 윤석진(충남대 국문과 교수)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가나다 순>가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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