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하면 유한기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원동에서 '청원농장'을 운영하는 유한기(63)ㆍ조금순(63)씨 부부얘기다. 유씨의 집에 들어서자 마당에 산 더미처럼 쌓여 있는 배 상자와 트랙터, 선별기, 소독기 등 무려 13 종류의 농기계들이 눈에 띈다.
한 눈에 봐도 그가 평범한 농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이곳 3만8,000㎡(600그루)의 과수원에서 배 8,000상자를 수확해 한해 2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타고난 농사꾼
그는 '성공한 농사꾼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전주농고 축산과를 졸업한 뒤, 24살부터 '전업 농부'가 됐다. 처음에는 축산과 출신답게 농협에서 대출받아 소 8마리를 키웠으나 일손이 부족해 팔아 치우고 부인과 함께 과수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복숭아 농사로 재미를 봤지만, 배 시세가 좋아지자 과감히 작목을 바꿨다.
토질이 비옥한 데다 생산량이 많고 시세도 좋아 소득이 짭짤했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선진 재배기술 도입과 친환경농법으로 '전주 배'를 전국적 명품으로 끌어 올렸다.
'전주 배'는 당도가 높고 향기가 뛰어난데다 과즙도 풍부하다. 1990년 초 품질 인증마크를 받은 뒤, '전주 배'는 마침내 '나주 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특히 1995년11월 태국에서 열린 '국제과일 품평회'에선 유씨가 출품한 '신고배'가 대상을 수상, 우리나라 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으며 이 같은 공로로 그는 대통령 훈장과 새농민상을 잇따라 받았다.
그는 '유명인'이 됐다. 매년 봄, 가을 전국의 농민과 농대학생들이 300여명씩 견학을 와 성공 비결을 배우고 간다. 유씨는 이들에게 늘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할일 없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10년 이상 혼신을 바쳐야 한다"고.
친환경 농법
유씨의 성공비결 가운데 하나는 친환경 농법인데, 그 노하우가 어마어마하다. 유씨는 먼저 쌀겨 어분 돈분 등을 골고루 섞어 만든 발효퇴비를 듬뿍 뿌려 토양을 개선했다.
또 소와 돼지뼈를 갈아 양조장서 팔다 남은 막걸리와 섞어 발효시킨 골분, 그리고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해수를 서해바다에서 떠다가 담수와 혼합해 과수밭에 뿌려주었다. 병충해는 쑥 은행 미나리에 막걸리와 맥주를 섞어 만든 '특효약'을 살포함으로써 예방했다.
물론 이런 노하우가 쉽게 터득된 것은 아니다. 매년 농한기에 나주와 평택, 안성, 울산 등 국내 유명 배산지를 돌며 사람을 사귀며 듣고, 곁눈질로 배웠다. "처음에 찾아가면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 헛고생 많이 했지. 친해져도 자신의 노하우를 모두 알려주는 법은 없어요"
과학적 접근 덕에 그는 IMF도 타격 없이 넘길 수 있었다. 20년 전에 설치한 저온저장고에 4,500상자를 넣어 두고 전국을 돌며 수확량 예측해 출하시기 조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고 한다. 요즘은 농장마다 소형 저장창고를 가지고 있어 제대로 통계를 낼 수 없는데다 이상기온 현상으로 전국 어느 곳이나 배 재배가 가능해져 소득이 20여년 보다도 30%나 줄었다는 것이다..
판매가 관건
"농부에게 농사는 쉽지만 판매는 정말 어렵습니다. 수요를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농민은 농사만 짓고 판로는 정부와 농협에서 맡아야 농촌이 사는 길입니다"
새농민회 전북회장과 전주시 농촌지도자연맹회장, 농민연합회 전주시회장 등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씨는 내년 1월26일 선출하는 북전주농협조합장 선거에도 출마할 계획이다.
"감투가 목적이 아닙니다. 평생 농사 지으며 쌓은 경험을 통해 유통망을 개선함으로써, 어려운 여건에 처한 2,000여명의 조합원 소득향상에 앞장설 생각입니다"
남은 목표는 한가지. 죽는 날까지 지금처럼 소비자들이 '유한기 배'라고 하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최고 상품을 생산하는 일이란다. 이런 각오면 진정한 농사꾼 아닐까.
최수학 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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