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말이 떠돌았다.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4억 달러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사 20세기폭스는 묵묵부답이다. 미국 연예주간지 할리우드리포터를 비롯한 일부 외신들은 3억 달러짜리 블록버스터로 간주하고 있다. 정확한 제작비야 어찌됐든 역대 최대라는 수식어가 곧잘 따라다닌다.
얼핏 보기만 해도 3D영화 '아바타'는 대작임을 눈치챌 수 있다. 161분의 상영시간 동안 스크린에선 돈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낯선 입체 화면이 동공을 압박하고, 화려한 스펙터클이 시신경을 찌른다.
이야기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서부영화의 틀 위에 베트남전 영화가 오버랩되고 인류의 영웅신화가 포개진다. 서부영화 '늑대와 춤을'(1990)과 베트남전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의 그림자가 특히나 짙다.
해병대 출신으로 전장에서 다리를 못쓰게 된 제이크(샘 워딩톤)는 쌍둥이 형을 대신해 2154년 지구로부터 5년 9개월은 걸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행성 판도라에 도착한다. '나비(Nav'i)'족이라는 파란 피부의 장신 외계 종족이 터를 잡고 있는 판도라에서 인간들은 지구의 대체 에너지를 채굴하려 한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DNA와 인간의 DNA를 섞어 만든 원격조종 생명체 '아바타'를 통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나비족과 친교를 맺는 동시에 그들의 정보를 염탐해야 하는 것. 대가로 제이크에게 내려질 보상은 그를 다시 걸을 수 있게 할 온전한 다리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족장 딸인 네이티리(조 샐다나)를 만나 순조롭게 임무를 수행한다. 그들의 말을 배우고 종교를 이해하고 사냥법을 습득한다. 모든 생물과 교감하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을 추구하는 나비족을 통해 조화로운 자연의 중요성도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육신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현실과, 마음껏 몸을 부릴 수 있는 아바타의 삶 사이에서 갈등한다. 무엇보다 네이티리와의 연정은 그를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몰아넣는다. 인간들이 광물을 채굴하기 위해 나비족의 삶의 터전을 공격하려 하면서 제이크는 인간이냐 나비족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제이크를 서부의 총잡이나 기병대 장교로, 나비족을 인디언으로 바꿔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이야기다. 카메라는 헬리콥터 모양의 비행물체를 탄 인간이 울창한 밀림 위를 날아다니며 공격하는 모습을 꾸준히 잡아낸다.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나비족을 '파란 원숭이'라 비하한다. 서구인의 황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적 단어를 연상케 한다. 이 영화를 서부영화의 변형이고, 베트남전 영화의 또 다른 버전이라 해도 무방한 이유들이다.
자연을 뭉개고 원주민을 압살했던 서부개척시대 백인들의 탐욕과, 베트남전의 아픔을 상기시키면서 영화는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려 한다. 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21세기 인류의 화두에도 코드를 맞춘다. 하지만 나비족의 영웅으로 부상하는 제이크의 일화는 또 다른 백인우월주의로 비친다. 상업적 전략이라지만 여전히 위험한 발상이다. 환경 보전을 외치면서 인공적인 아름다움으로 스크린을 덧칠한 점도 아이러니다.
결국 영화 '아바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컴퓨터가 그려낸 판도라 행성의 진경이다. 말의 모양을 한 다이어호스, 익룡을 닮은 이크란 등 기이한 생명체들이 시선을 잡는다. 제이크 등이 이크란에 올라타 창공을 활강하는 장면은 아찔하다. 인간과 나비족이 펼쳐내는 전투장면도 넋을 빼놓는다. 특히 인간의 표정과 몸동작을 그대로 담아낸 나비족의 모습은 경이롭기만 하다. 배우들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잡아내 세세한 움직임까지도 컴퓨터그래픽으로 옮길 수 있다는 '이모션 퍼포먼스 캡처'(Emotion Performance Capture) 기술 덕이다. 카메론은 1995년 단 2주 만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내고도, 나비족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이후 14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카메론이 '타이타닉' 이후 12년 만에 내놓는 영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포장하는 카메론의 남다른 화술은 여전하다. 3D영화라지만 딱히 기존 2차원 영화와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한다.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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