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사회에서 일상적 화두가 된 개념 중에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게 있다. 지난해 봄 대대적으로 촛불시위를 조직하고 구동한 온라인대중의 힘을 평가하면서 학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용어다. 연말에 즈음해 수많은 재야고수들이 인터넷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경제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글을 올렸을 때도 이 개념이 거듭 사용됐다. '우리가 개인보다 현명하다(We are smarter than me)'는 것이 그 기본명제라는 것쯤은 이제 다들 안다. 한마디로 똑똑한 한 명의 식견보다 평범한 여럿의 생각을 모은 게 더 낫다는 말이다.
▦지난 연초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이 순조롭게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금까지 2년간 열린 국민참여재판 147건 가운데 유ㆍ무죄 판단과 관련,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일치한 경우가 134건, 무려 91.2%에 달했다는 것이다. 양형에서도 배심원과 재판부의 판단차이가 대체로 1년 이내로 나타나는 등 기대 이상의 근접도를 보였다. 일반인 중에서 무작위로 선출된 7~9명이 상식선에서 내린 판단이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쌓은 법관의 판단보다 결코 못지 않다는 얘기다. 국민의 '법감정'이란 것이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 것이라는 말도 된다.
▦국민참여재판 역시 집단지성의 힘과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만하다. 집단지성은 원래 자연과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별 볼일 없는 개미가 집단화하면 경이로운 사회건설 및 운영능력을 보이는 데서 착안된 것이 인문ㆍ사회과학으로 확대적용된 것이다. 이것을 현대의 사이버공간을 통한 지식혁명, 나아가 대중에 의한 정치ㆍ경제ㆍ사회변혁 가능성으로까지 의미를 확장한 이가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레비다. "누구나 전부는 모르지만, 조금씩은 안다. 그러므로 지식 전체는 인류 안에 있다"는 그의 명제에서 집단지성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묻어난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전제가 있다. 특정 의도나 힘, 집단적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명백히 잘못된 정보가 개입됐다면 아무리 많은 개인이 모여도 '지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생각과 목적에 열광하고 확대재생산하는 동질 집단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미 지난해 경험한 바다. 앞서 국민참여재판 사례에서 보듯 집단지성은 참여하는 각자가 독립적이고 다양성을 지니며 서로간에 통합을 위한 소통, 특히 이견에 대한 경청이 가능할 때에만 유효한 것이다. 여전히 소통보다는 단절에 익숙한 우리사회에서 집단지성에 대한 기대를 자신있게 말하기가 아직은 주저되는 이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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