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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고리, 사람이 사람에게] <3> 다섯 아이 돕는 중국집 배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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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고리, 사람이 사람에게] <3> 다섯 아이 돕는 중국집 배달원

입력
2009.12.1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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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생해 번 돈으로 애들을 돕는다고요? 당연히 돈 많은 사장님인 줄 알았는데…."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임대주택에서 손녀 이지현(14ㆍ가명)양의 후원자 김우수(52)씨를 맞은 최혜숙(70ㆍ가명)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2년 2개월 동안 매달 후원금을 보내준 고마운 사람이 7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 중국집 배달원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는 최씨 앞에서 김씨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저는 다섯 아이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걸요."

김씨는 매달 박봉에서 10만원을 떼 형편이 어려운 국내외 아동 5명을 돕고 있다. 2006년 10월 세 아이와 인연을 맺으며 시작한 후원 활동이 어느덧 3년을 넘었다. 하나 둘 늘어난 '사랑의 자녀' 중엔 멀리 에티오피아에 사는 12세 소년 후샌모사도 있다.

이날 김씨와 지현이 가족의 만남은 기자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후원자와 수혜자를 맺어주는 단체에서는 보통 상대방에 대한 자세한 신상 정보를 알리지 않는다. 행여 서로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감사 편지도 단체를 통해서만 후원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김씨는 아이들을 사진으로만 봤지만, 지현이는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올 3월 우릴 이어준 어린이재단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후원 시작할 때 받은 사진엔 볼이 통통한데, 중학교 2학년이라 그런지 얼굴 살이 쏙 빠져 예뻐졌더라고요." 아쉽게도 이날은 지현이가 학교에 있어서 두 사람의 재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현이는 여섯 살 때 두 언니와 함께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이혼한 부모는 연락마저 끊었다. 이후 다섯 가족 생계는 영업용 택시를 모는 할아버지 이석민(70ㆍ가명)씨의 월급 60만~70만원으로 꾸리고 있다. 의식주 해결에도 빠듯한 수입이라 빚만 늘어가는 실정이다.

지현이네 형편은 김씨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나빴다. 할아버지는 두 달 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암을 발견했지만, 나이도 많은데 암까지 걸렸다고 하면 직장을 잃을까봐 회사엔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집안일을 핑계로 나흘 휴가를 얻어 수술을 받은 뒤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수술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던 최씨도 계단에서 넘어져 척추를 크게 다쳤다.

최씨는 "꾸준히 도와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돈보다도 따뜻한 마음이 우리에게 더 큰 힘이 된다"며 김씨의 손을 꼭 쥐었다. "아 참, 지현이가 이 말을 꼭 전해달래요.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직장 다니고 돈 벌면 아저씨처럼 어려운 사람을 꼭 도울 거에요.'" 김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들의 수줍은 인사, 꾹꾹 눌러쓴 편지, 이런 것만큼 김씨를 기쁘게 하는 건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김씨의 삶은 '막장 인생'이나 다름 없었다. "가족도 없이 오토바이 배달을 하니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죠. 돈을 버는 족족 노름을 하거나 술을 마시며 탕진했습니다." 배달 중 사고를 당해 8일간 혼수상태에 빠지고, 월급을 떼여 빈털터리가 되는 등 악재가 겹쳤다. 급기야 술집에서 돈 없다고 박대하는데 격분해 불을 지르려다 방화미수범으로 붙들려 1년 반 징역살이를 했다.

출소 6개월 앞둔 2006년 2월, 우연히 손에 든 잡지 기사가 그의 인생 행로를 돌렸다. 가정폭력과 빈곤에 처한 아이들 사연과 후원자의 이야기였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는 일곱 살 때 고아원에 보내졌다가 열두 살 때 도망쳐 떠돌이 생활을 했다. 심지어 구걸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김씨는 "그 시절의 아픔이 떠오르면서 힘든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고 말했다.

출소 두 달 만에 시작한 후원 활동은 곧 작지만 뜻 깊은 결실을 맺었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일곱 살 소녀를 후원한 지 1년이 됐을 무렵, 그 어머니가 "도움을 받으며 자립 의지가 생겼다. 내 힘으로 딸을 키우겠다"고 밝힌 것. 작은 나눔이 한 가족에게 웃음을 되찾아줬다는 사실이 김씨의 의욕을 북돋웠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그가 에티오피아 소년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보내주신 돈으로 학용품도 사고 옷도 사 입었어요.' 후샌모사가 보낸 편지를 읽고 김씨는 가슴이 뻐근하다. 후원금으로 매달 문제집을 사서 푼 덕에 성적이 올랐다는 박일준(14ㆍ가명)군의 소식도 반갑기 그지없다.

김씨는 "아이들 덕에 새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 처음으로 저축이란 걸 하게 됐다. 창문도 없는 월세 25만원짜리 고시원 방도 책상 위에서 환히 웃고 있는 다섯 아이 덕분에 아늑해졌다. "12시간 동안 힘들게 배달을 하고 와도 아이들 사진을 보면 피로가 싹 풀려요."

지현?할머니와 작별하던 김씨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애들과 공원도 가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은데, 제 형편으론 힘들겠더라고요. 그게 참 미안합니다." "아이고, 지금까지 받은 걸로 충분해요. 어쩜 이런 분이 다 있을까. 정말 고맙고 미안해요."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람, 그가 천천히 현관문을 나섰다.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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