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게도 여성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내게 로맨스의 대상이 아니지만…"
이 책 <고종석의 여자들> (개마고원 발행)의 밑감이 된 연재물에 앞서 한국일보에 연재한 다른 기획 시리즈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의 시작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대목은, 기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이상케도 저자의 얼굴과 오버랩된 채 오래 뇌리에 남았다. 그래서 그의 후속 시리즈 제목이 '여자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무도 몰래 혼자서 유쾌했던 기억이 있다. 고종석의>
<고종석의 여자들> 은 그 '여자들'을 묶은 에세이집이다. 저자가 로자 룩셈부르크나 윤심덕처럼 기록을 통해서만 만난 여자도 있고, 강금실이나 황인숙처럼 직접적인 연이 닿는 여자도 있다. 34명의 여자 가운데는 측천무후나 셰헤라자데도 포함된다. 저자는 이 무연한 외연에 대해 "피와 살을 지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여자들"이라며 "우연히 내 눈에 걸려든, 그리고 특별히 마음이 가는 여자들만 살폈다"고 밝혔다. 고종석의>
저자는 서문에 "서른네 여자들에 대한 내 생각이 흥미를 끌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더 바라는 것은 그 생각의 깊이를 얻는 것이다"라고 썼다. 그리 해도 좋을 일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빼어난 문장가 가운데 한 명에게서 느껴지던, 께느른한 습기의 정체를 탐색해보는 것도 재미난 일일 듯. 힌트를 주자면,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 일찍이 저자에 대해 이렇게 간파한 바 있다. "고종석의 글쓰기의 비밀은 '누이 콤플렉스'라고 명명할 법한 아니마(남성이 지니는 무의식적인 여성적 요소) 지향성에 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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