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8년 11월3일자와 2007년 3월31일자의 한국일보를 비롯하여 조선일보 서울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 그리고 많은 강연 등을 통해서 우리의 교육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한 나의 주장을 이 자리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 3인 아들을 두고 있는 미국 친구 집에 간 일이 있는데 그 아들은 매일 오후 3시면 학업이 끝나 그 뒤로는 운동이나 봉사 또는 취미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 날은 마침 골프 교습을 받는 날이라고 해서 골프채를 메고 나갔다.
그 학생은 뛰어난 우등생이었는데 졸업해서는 바로 대학에 가지 않고 1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와 다음 해 하버드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이들에게 학교는 공부하고 뛰어 놀고 사회를 배우는 즐거운 삶의 장이다.
우리는 어떤가.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새벽부터 자정까지 학교 수업과 이곳 저곳 사교육을 받느라 학업의 노예가 되어 있고 온 가족이 모두 그런 생활에 찌들려 있다. 가계는 과중한 사교육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학교 시설은 열악하고 교육의 경쟁력은 낙후되어 있다.
소득에 대한 사교육비 부담률이나 공교육비까지 포함한 총교육비의 부담률은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데 교육의 효율성이나 대학경쟁력은 꼴찌에 들어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역대 정부는 사교육규제 등 이런저런 대책들을 써보았지만 해결은커녕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국민들의 교육관을 고쳐 교육문화를 바꿔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첫째로 내 자식만 잘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공공재란 공기나 교통문제처럼 개인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 함께 노력해야만 해결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교육을 쌀이나 자동차처럼 돈만 있으면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유재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문제를 사회적으로 함께 해결하려 하지 않고 돈을 들여 내 자식만 잘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교육세는 내지 않으려 하고 유산은 대학에 바치려 하지 않으면서 무거운 사교육비는 흔쾌히 부담하고 있다. 만일 그 동안의 사교육비를 교육세로 냈다고 한다면 아마 우리의 교육문제는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교육은 자녀들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려는 이른바 출세교육인데 이것을 훌륭한 시민을 길러내는 시민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서구사회의 시민교육은 사회공동생활을 위한 질서와 협동을 가르치고 이에 필요한 능력을 적성에 맞게 개발시켜 주는데 목적이 있다. 반면 우리의 교육은 '더불어'가 아니라 '나'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는 출세교육에 목적이 있다.
출세의 길은 매우 좁기 때문에 높은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여기서 이기기 위해서 명문대학에 가야하고 과외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시민교육이 다원적 가치를 위한 협동을 가르치는데 반해 우리의 출세교육은 단선적 가치를 위해 배타적 경쟁을 가르친다.
셋째로 우리의 자녀교육은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이것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인의 자녀사랑은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랑이다. 내 자식이 잘 하든 못하든 그 편을 든다. 더구나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자녀들에게 어려움이나 부족함은 없게 하고 과잉보호하여 어려움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키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경험을 거치지 않는 인식은 행동화 되지 않는 것이다. 같은 온도를 나타내지만 경험을 거친 섭씨와 거치지 않은 화씨가 체감력이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서구 선진국에서는 부유층들도 여름방학 때 학교 다니는 자녀들을 아르바이트 일터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하고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하는 교육을 주어야 한다.
끝으로 대학입시제도가 수능성적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숨어 있는 잠재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수능성적은 주로 계발된 암기력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학생능력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보다도 학교의 내신 성적, 숨어 있는 잠재력이나 천재성, 대인관계 봉사정신 리더십 등 인성적 요인이 더 중요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우리의 수능시험과 같은 SAT라는 것이 있지만 여러 가지 참고사항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러한 문제해결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나는 올해 KAIST 입학사정관으로 봉사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여기에는 통계자료가 뒷받침 한다. 1990년대부터 서강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서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도를 조사해 본 결과 수능성적과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고 고교의 내신 성적과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2006년 서울대의 조사에서는 수능성적으로 뽑는 정시모집 학생들 보다 지역균형전형으로 뽑은 성적이 뒤지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고 판명된 것이다. 실제 나의 25년간에 걸친 대학교수 생활을 통해서도 수능성적이 나쁜 시골학생들이 갈수록 두각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심각한 교육문제는 이제 땜질식의 미봉적 대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의 교육관을 바로 세우고 교육문화를 바꾸는 방향으로 국민의 자각과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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