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다산 선생이 개탄했던 정치 경제적인 불평등과 모순은 아직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지난 5년여 동안 인터넷과 이메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 철학과 인간적 풍경을 소개해온 '풀어 쓰는 다산이야기' 칼럼이 최근 600회를 넘겼다.
다산연구소 회원 35만여명에 이메일로 배달되는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칼럼을 600회 연재한 박석무(67) 한국고전번역원장의 소감이다.
그는 "다산이 '약석(藥石)'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현실 속 갈등을 해결하는 방책을 찾는 데 몰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약석이란 약과 침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약을 통틀어 치료하는 일을 뜻한다.
다산의 철학이 결국 '실용'으로 모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원장은 "다산이 말하는 실용은 두 가지 요소가 있다"며 "하나는 '잘살아보세'로 대표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사는냐'는 도덕적 가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산은 두 가지가 겸행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요즘 우리 정치와 사회는 너무 '잘사는'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다산이 살던 시대는 세도정치 지배 하에 탐관오리가 넘치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때였다. 박 원장은 "지금 우리 상황도 결코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최근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전 세계 국가중 브루나이, 오만과 함께 39위에 그쳤고, 지자체 관련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끊이지 않는 국방 비리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거론하며 근본적 처방을 주문하기도 했다.
박 원장은 "다산이 정책 프로그램의 하나로 부패 척결을 제시했다"며 "부패 방지는 지금도 국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전남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박 원장이 다산에 깊이 빠져들게 된 때는 대학원을 다니면서부터다. 지도교수인 고 조병갑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박 원장이 한문에 능숙하다는 소문을 듣고 "자네는 한문을 잘하니 한국법제사를 공부하라"고 권유한 것이다.
전남 무안이 고향인 박 원장의 증조부는 호남에서 유명한 유학자였던 박임상 선생이다. 이 때문에 박 원장은 어려서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이렇게 쌓은 한문 지식을 밑천 삼아 다산의 법제도론인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읽기 시작해 대학원 논문으로 '다산의 법사상'을 썼다. 흠흠신서> 경세유표>
그러나 학창 시절 한일수교, 월남파병 반대 시위에 앞장섰던 박 원장이 대학에서 일할 기회를 얻기는 어려웠다. 교사 자격을 갖고 있던 그가 선택한 길은 고교에서 교편을 잡는 일이었다. 이후 사립고교의 영어 교사로 13년을 재직했고 송영길,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이때 그가 직접 가르친 제자들이다.
박 원장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수배를 받는 등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고, 88년에 재야 인사 영입 몫으로 평민당 공천을 받아 무안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국회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던 일로 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추진했던 교육개혁을 꼽는다.
하지만 의정 활동 중에도 고전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끊이질 않았다. 재선을 끝으로 정치를 그만둔 박 원장은 다시 교육계로 돌아왔다. 박 원장은 "정치를 그만두고 나만큼 정치권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단국대 이사장을 맡아 캠퍼스 이전 사업을 처리했고, 2007년 11월부터 초대(初代) 고전번역원장으로서 번역의 질을 높이고 번역가를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고전번역원은 정부의 예산에 의해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노무현정부 말기에 취임한 박 원장이 요즘 가장 고민하는 것은 예산 증액 문제. 세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권, 특히 여당을 설득하여 협조를 이끌어내는 일이 녹록지 않다.
그는 "고전 번역을 활성화하는 것은 국격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라며 "이것이 곧 다산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고전번역원장 직을 마친 후에도 해왔던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서 다산 정신과 고전을 살리려는 열정과 의욕이 여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박 원장은 "예산 23억을 늘리는 문제가 절실하기 때문에 국회로 가야 한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성시영 기자 s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