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CD패널, 中시장 변화읽고 기적의 점유율… 휴대폰도 노키아 추격
낚시나 그물이 아닌 새를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 있다. 가마우지라는 새를 잡아 목 아래를 끈으로 묶어 두면 가마우지는 아무리 열심히 물고기를 잡더라도 이를 삼킬 수 없다. 이때 가마우지의 목에 걸린 고기들을 빼내기만 하면 된다. 일본은 핵심 부품이나 소재를 수입해,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우리나라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빗대 표현했다. 아무리 열심히 수출을 해 봤자 정작 이득은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였다.
이런 일이 이젠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LCD TV용 패널의 출하량이 올해 중국에서 10배로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LCD 패널, 현지 업체들과 상생으로 고성장
1월 중국시장에서 팔린 삼성전자의 LCD TV용 패널은 6만6,000대로, 시장 점유율은 8.3%에 불과했다. 당시 1위는 CMO라는 대만 업체. 삼성전자보다 5배 가까운 30만8,000대를 출하, 시장 점유율이 38.6%나 됐다.
그러나 9월 삼성전자의 중국 LCD TV용 패널은 출하량이 66만7,000대로 늘어났다. 시장 점유율도 26.6%로 3배 이상 확대됐다. 아직 CMO의 73만4,000대(시장 점유율 29.3%)엔 못 미치나 공급이 주문을 맞추지 못할 정도다.
단기간 내 출하량과 시장점유율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제조업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삼성전자가 LCD TV의 핵심 부품인 TV용 패널을 중국 현지 업체에도 공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TCL, 하이센스, 콘카 등 중국 LCD TV 제조사들에게 공급량을 확대한 것. 이들 업체들은 낡은 가전 제품을 바꿀 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에 따라서 LCD TV 수요가 급증하자 생산량을 대폭 늘려야만 했다. 그러나 LCD TV의 핵심인 패널은 자체 제작할 수가 없어 삼성전자에게 손을 내민 것. 실제로 지난해 1,337만대 규모였던 중국 LCD TV 시장은 올해엔 2,360만대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중국 현지 시장의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했는지는 일본 업체들과 비교하면 더욱 확연하다. 일본 업체인 샤프의 경우 중국 LCD TV용 패널 출하량이 1월 12만대에서 9월에도 12만대로 제자리 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중국 LCD TV용 시장의 파이가 커지며 샤프의 시장 점유율은 15.1%에서 5.0%로 축소됐다.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은 전 세계 LCD TV용 패널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의 전세계 LCD TV용 패널 시장 점유율은 1월 23.9%에서 9월 27.2%로 확대됐다. 반면 샤프는 12.4%에서 9.3%로 감소했다. 삼성전자 깜짝 실적의 비결이 신흥시장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휴대폰 시장 1위 추격도 신흥시장에서 발동
삼성전자가 휴대폰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 노키아를 따라잡기 위한 시동을 먼저 걸고 있는 곳도 바로 신흥시장이다. 삼성전자가 5월초 출시한 휴대폰 '스타'의 경우 중국,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등지의 신흥시장에서 특히 선전하고 있다.
실제로 칠레에선 '스타'가 출시된 뒤 삼성전자의 7월 휴대폰 시장점유율이 32.8%까지 치솟으며 노키아(36.3%)와의 격차를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이 39.8%, 삼성전자가 16.7%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스타'는 대만에서도 7월 전체 스마트폰 카테고리에서 2위 제품보다 3배 이상 판매되며 정상에 올랐다.
이런 신흥시장 돌풍의 효과에 힘입어 '스타'는 지난달 삼성 휴대폰 사상 최단 기간인 6개월 만에 1,000만대가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에 따라 지난해 3분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시장에서 삼성전자 휴대폰의 시장 점유율은 10.8%에 그쳤으나 올해 3분기엔 17.2%까지 확대됐다.
TV도 신흥시장에서 2위와의 격차 벌려
TV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2분기 중동ㆍ아프리카 LCD TV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금액기준) 43.1%로, 2위와 20% 포인트의 격차로 독주했다. 세계 LCD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일본 경쟁 업체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10% 포인트 정도다. 중국 LCD TV 시장에서도 1월에는 글로벌 브랜드(현지 업체 제외) 가운데 3위에 그쳤으나 7월에는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삼성전자와 다른 글로벌 기업과의 승부처는 결국 신흥시장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뚫어라! 新금맥
# 올해 1월 중국 시장에서 팔린 삼성전자의 LCD TV용 패널은 6만6,000대. 그러나 9월 출하량은 66만7,000대였다. 중국 정부가 가전 제품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으로 수요가 폭증, 8개월 만에 판매량이 10배로 늘어났다.
# 현대차의 1~10월 중국 시장 판매량은 46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89.3%나 증가했다. 기아차도 18만대를 팔아 55.3%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올해 중국 자동차 시장 성장률이 37.3%로 예상되는 것을 감안하면 신화적인 수치다.
삼성전자와 현대ㆍ기아차, LG전자 등 우리 대표기업들이 중국을 비롯한 신흥 시장에서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있다. 덕분에 전통 시장인 미국ㆍ유럽보다 신흥 시장이 우리 경제의 효자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우리 기업들이 깜짝 실적을 올린 것도 신흥 시장에서 선전이 바탕이 됐다.
신흥 시장 중 가장 주목할 곳은 역시 중국.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달 1~20일 중국 수출액은 54억3,3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2.2% 증가했다. 지난달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액이 342억7,000만달러로 올해 들어 처음 전년동기대비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중국 덕분이다.
중국 시장의 비중이 커지면서 주요 기업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인도와 중국을 차례로 방문한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은 연산 30만대 규모의 베이징현대 제3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10일 중국 쑤저우에서 이윤우 부회장과 박근희 사장, 이재용 전무가 참석한 가운데 제조부문 전략 회의를 열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최태원 SK 회장이 계열사 CEO 전략세미나를 주재했다. 구본무 LG 회장도 10월말 중국 난징을 방문, "중국은 더 이상 생산거점이 아니라 동반 성장해야 할 전략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기업들의 신흥시장 성적이 눈부신 이유는 제품 경쟁력에 환율효과로 인한 가격 경쟁력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또 현지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민첩하게 대응, 현지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제품을 내 놓은 것도 성공비결.
엄정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전체 수출에서 신흥 시장 비중이 사상 최고에 이르는 만큼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며 "다만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중 정책효과가 큰 경기 부양책이 차지하는 부분이 6%로 세계 최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자만해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 제품 현지화·지역특화 마케팅 '원동력'
삼성전자가 올해 신흥시장에서 영토를 크게 넓힐 수 있었던 것은 현지화한 제품 출시와 지역 특화 마케팅이 수레의 두 바퀴 역할을 해 냈기 때문이다.
현지화한 제품 출시는 6월 인도에서 세계 최초로 선 보인 태양광폰 '크레스트 솔라'가 대표적인 예다. 전력 사정이 여의치 않아 충전이 어려운 인도 지역의 특성을 간파한 것. 삼성전자는 이 휴대폰을 낮이 길고 태양광이 강해 태양광 충전이 용이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도 판매, 큰 호응을 얻었다.
듀오스폰도 철저한 현지화의 산물이다. 2개의 가입자인증모듈(SIM) 카드를 끼울 수 있는 이 휴대폰은 전화기는 하나인데 전화번호는 두 개이다. 러시아 비즈니스맨의 경우 회사용 SIM카드와 개인용 SIM카드를 바꿔 끼며 사용하는 일이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인도에선 오토바이 소음 등 외부 환경이 시끄러워 사용자가 휴대폰 벨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많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링톤 사운드의 기본값을 높게 설정했다. 또 아프리카의 경우 시장 특성상 전기 상황이 좋지 않아 비상용 랜턴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점에 착안, 비상용 랜턴 기능을 탑재한 휴대폰을 출시했다. 나아가 휴대폰 분실에 대비,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기능까지 탑재했다. SIM 카드를 바꿀 경우 지정된 번호로 단문 메시지 자동으로 보내주는 기능을 통해서 분실된 휴대폰 추적을 가능케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또 아프리카 토속 언어를 탑재한 휴대폰도 출시, 호응을 얻었다.
지역 특화 마케팅도 빛이 났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시나닷컴'(www.sina.com)은 6월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 휴대폰 '제트'의 중국 시장 출시 행사를 중국 전역에 실황 중계했다. 베이징의 대표 문화 특구인 '798' 내 D-파크에서 '언팩트'(Unpacked)란 이름으로 열린 ' 제트'의 론칭 행사는 철저히 중국인 취향에 맞춰 진행됐다. 특히 3D 홀로그램 프리젠테이션은 참석자뿐 아니라 인터넷을 본 중국 신세대의 탄성을 자아냈다.
러시아에서는 문화ㆍ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12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 2대의 LED TV를 기증하는 문화마케팅을 폈다. 지난 9월 중동 지역에서 진행된 '라마단 텐트'도 빼 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이슬람 최대 종교 행사인 라마단(이슬람교 금식 성월) 기간 동안 두바이에 대형 라마단 텐트를 설치했다. 라마단 기간엔 해가 떠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해가 진 뒤에 텐트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이슬람 특유의 문화를 고려해 가장 큰 텐트 하나를 후원하고, 이곳에 LED TV와 휴대폰, 노트북, 전자레인지 등을 전시한 것.
삼성전자는 또 8월 브라질에서 '제트'를 출시하며 브라질 1,2대 통신사업자인 '비보'와 '클라로'의 최고경영자를 비롯 브라질 최고의 인기 여배우 타냐 칼릴 등 400여명을 초청, 현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한편 미스 말레이시아 유니버스 대회 공식 후원사인 삼성전자 말레이시아 법인은 7월 대회 최종 진출자를 발광다이오드(LED) TV 매장으로 초청했고, 태국에선 주요 매장마다 이이남 작가의 디지털아트가 담긴 LED TV 갤러리를 전시, 주목을 받았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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