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추상미의 '가을 소나타'- 극단 수의 '13월의 길목'
야위어가는 달력을 닮은 무대가 온다. 유난스런 무대 장치도, 특정한 사건도 없다. 인간들은 앙상한 존재감을 어떻게 수습해나가고 있을까.
신시컴퍼니의 '가을 소나타'는 스웨덴 감독 잉마르 베르히만이 1978년에 만든 자전적 영화 '가을 소나타'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어머니는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딸은 언제나 애정에 굶주려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 역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 애정 결핍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 극의 진행과 함께 드러난다.
어머니로 분하는 손숙이 대본을 들고 제작사를 물색, 무대로 연결됐다. 손씨는 "가족보다는 자신을 위해 살아온 예술가가 그려내는 삶의 풍경을, 나 자신도 모르는 새 밟고 있을 것 같아 더럭 겁이 났다"며 이번 작품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어머니에게 주눅들어 사는 딸은 추상미가 연기한다. 명배우 고 추송웅의 딸인 그는, 부친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썼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곧 배역에 대한 감정이입이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연기력을 펼치고 있는 박경, 신예 이태린도 출연한다. 내년 1월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02)577-1987
극단 수(秀)의 '13월의 길목'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어 안는 사연을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연말 어느날 밤이다. 틈틈이 글을 쓰는 동사무소 직원, 지방 방송국 PD, 사진작가, 여행가 등 한 카페의 단골들이 모여 펼치는 연말 파티장이다. 기억 속에서 서로는 얽혀 있고, 이야기를 펼쳐가면서 서로를 보듬어 가는데, 때마침 첫눈이 내린다. 내년 1월 3일까지 행복한 극장. (02)889-3561~2
두 작품은 무대 공간의 관점에서 선명하게 대립된다. '가을 소나타'가 각 주인공마다 따로 떨어진 방을 부여해 차단돼 있다는 고립감을 선연히 드러낸다면, '13월의 길목'은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카페 한 곳으로 한정해 친밀감을 강조한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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