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친구집에 가서 공부한다고 허락해 달라는 아들녀석의 성화에 허락을 했습니다. 1시간 30분동안 아들은 수학 2페이지를 풀어와서 엄마는 화가 났습니다. 화를 참고 있는데 저녁10시에 가방을 챙기던 녀석의 알림장에 수학 시험지를 풀어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선생님한테 시험지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엄마는 왜 너만 받지 않을 수 있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엄마는 50cm 자로 아들의 등짝을 한 대 때려 주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무려 일기를 세 쪽이나 써 놓았더라구요. 아들의 일기를 읽고 엄마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요즈음 아이들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도 들었답니다.
그래도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푸는 아들 녀석이 기특하기도 합니다. 아들 일기 그대로 워드로 쳐서 남편에게도 보내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시대에도 보냅니다. 산하ㆍ건하 엄마 올림
<2009년 12월3일 화요일 홍산하 일기>
제목: 어른
어른은 이기적이다. 물론 모든 어른은 아니겠지만 특히, 우리 엄마는 이기적이다. 내가 말하는 이기는 엄마도 분명히 어린이였을텐데 우리 마음도 모르고, 우리의 말은 한마디도 안 듣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면서 우리의 주장은 말대꾸고 우리의 근거는 핑계라고 하며 한마디도 못하게 한다.
엄마의 어릴 적에 엄마의 엄마도 분명히 그래서 엄마가 저렇게 되었나 보다. 방정환이 어린이가 어린이인 이유는 어린이들도 그들의 주장을 내세울 권리가 있어서 어린이라고 하는 것인데 엄마는 아무것도 물어보지도 않고, 다른 엄마처럼 잘 따져보지도 않고 자기 기분대로만 행동한다.
엄마는 기분 좋을 때는 잘해주면서 자기가 기분 나쁘다고 할 때면 우리에게 화풀이 한다. 엄마는 키워주어서 고마워해라 뭐해라 하지만 사랑 없이 키우는 자식은 정말 더러운 쓰레기이다. 물론 맨날 사랑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기분에만 맞추니 난 매일 엄마 기분에만 기도를 한다.
내가 실수하면 무조건 혼낸다. 지금도 조마조마하다. 내가 이 일기 쓰는 것을 들키면 또 공부 안하고 딴짓하냐고 내 일기장을 뺏는다. 나도 일기를 쓸 권리는 있다. 내 일기를 보면 엄마는 또 내가 언제 너에게 사랑을 안 줬니? 하며 말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변명이다. 우리는 기분에 맞춰서 받는 사랑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 또 자기가 나를 때리는 것은 사랑해서라고 하지만 우린 아직 그런 사랑을 코빼기도 모른다. 때리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면 내가 진짜로 잘못했을 때 때리지, 내 주장을 말한다고 때리지는 말아라. 또 이 글을 보면 내가 언제 네 주장을 말했을 때 때렸냐고 할 것이다. 더 이상 우리 어린이는 그런 변명을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오늘 양건호 집에서도 수학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2장밖에 못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내 의견은 내팽개치고 옛날 일 다 끄집어 내서 별 트집을 다 잡으며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솔직히 어떻게 항상 공부를 빠르게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엄마는 우리가 항상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엄친아'에 비교하는 것도 이제 질렸다. 엄마는 비교하는 게 아니고 말해주는 거라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교로밖에 안 들린다. 그러면 우린 자존심이 사라지고 점점 절망하고 그 친구를 원망하는 거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다. 그런데 엄마가 그 친구와의 사이를 더럽히고 있다. 나는 공부가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내 꿈이 크다 해서 엄마가 자꾸 공부를 시킨다고 변명하면 난 그 꿈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 빼기 위해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항상 이렇게 힘들게 살아간다. 가끔은 인생을 포기하고도 싶고, 진짜 살기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참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가끔 창 밖을 내다보는 이유가 그거다. 하지만 내가 그러고 있으면 엄마는 먼 산 바라보지 말고 공부나 하라 한다.
난 진짜 죽을 것 같다. 학교생활도 정말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힘든 나를 맞이해 주는 건 나밖에 없다. 제일 힘든 건 내가 우리반에서 믿을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거다. 너무 힘들어서 조금 쉬려 하면 공부해라 한다. 그래도 게임이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고 만화책도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줬는데 모두 금지 당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 아빠는 없을까? 내 마음을 진짜 알아줄 친구는 우리반에 없는 건가? 내가 사춘기가 왔나 보다. 아무튼 나의 마음은 어린이를 조금이라도 더 생각해 주고 실수도 좀 봐주고 어린이의 주장을 말대꾸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휴~, 이제 좀 속이 풀리네…끝.
광주 광산구 산월동 - 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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