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가 무너지고 있다. 그 여파로 빚이 많은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헝가리 등에 대한 경고음도 이어지고 있다. 두바이를 '사막 위에 핀 상상력의 꽃'이라고 줄지어 칭송한 것이 엊그제의 일이다. 뒷북으로라도 그 상상력의 한계를 반성해볼 시점이다.
세종시가 두바이처럼 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물론 세종시가 지역간 격차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려는 논의는 두바이를 본받자는 주장이나 대수도권 발전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전체가 수도권 메가시티를 일극으로 한 도시국가로 변모하고 있으며,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지역정책은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지속 가능성 없는 사상누각
수도 분할 반대논리는 기반이 꽤 견고하다. 신경제지리학이나 신고전파 경제학의 성장논리에 의하면 지역격차는 균형 상태로 가는 조정과정이다. 경제활동의 집적은 시장 메커니즘에서 발생하는 자유로운 현상이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과도한 집적이 낳는 시장실패의 경우 정부 개입이 필요하지만, 인위적인 공간재배치를 통한 정부 개입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보통시민의 현실 감각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한국의 지역간 격차는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에 비해 심한 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이 느끼는 격차의 심각성은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높다. 1인당 소비지출 수준, 1인당 토지자산액의 지역간 격차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자료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는 수도권 지역의 외연적 확대가 통계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통계적으로도 확연히 드러나는 점은 생산의 지역간 격차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단행한 대기업이 선도하는 산업부문 지역별 분포가 지역경제의 불균등한 성장에 영향을 미친 때문이다. 교육비 지출의 지역격차도 뚜렷하게 확대되고 있다. 향후 경제성장이 지식이나 혁신에 좌우된다고 할 때 교육이 지역간 격차를 구조적으로 증폭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같은 생산, 교육의 지역격차를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형성된 자연스런 결과로 볼 수는 없다. 한국 산업의 지역구조는 1970-80년대에 국가가 주도하여 생산기지를 배치한 결과이다. 대학과 특목고가 남용한 선발권은 사교육의 폭발적 확대를 가져왔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수월성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계층간ㆍ지역간 교육기회의 불균등에 기초한 교육격차 그 자체이다.
두바이가 시장경쟁의 결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우리나라의 지역격차도 부존자원의 지역간 차이, 정치적 지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두바이의 취약성은 핵심지역에 집중한 역사적 자원배분과 권력행사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성의 결여이다. 두바이는 사막의 기적이 아니라 무모한 획일성에 기초한 성장이었고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없는 사상누각이었다.
"두바이에서 배우자"고 하던 성장론자들의 주장은 한국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한국에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이 있다. 두바이와는 다르게 다양성의 세계를 개척할 가능성도 있다. 수도권 밖에서도 경부 축을 중심으로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중견기업들이 태동하고 있으며, 여타 지역에서도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지역순환형 산업의 잠재력이 있다. 에너지․ 환경 산업도 지역 단위로 네트워크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세종시 논란 지혜롭게
평범 속에서 지혜를 구한다면 판단은 더 쉽다. 한국이라는 배에 수도권 하나만을 태우기보다는 몇 개의 광역경제권을 함께 태우면 더 좋다. 대홍수를 앞두고 노아가 들은 말씀도 그렇다. "너는 식구들을 다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거라. 모든 정결한 짐승은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그리고 부정한 짐승은 수컷과 암컷으로 두 쌍씩, 네가 데리고 가거라."(성경 창세기)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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