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동네 만화방에서 가슴 졸이며 부모님 몰래 만화 보던 일, 반 친구에게 통사정해 최신 만화를 어렵사리 책가방에 몰래 숨겨 와 방에서 자는 척하며 이불 속에서 보던 기억이 난다. 물론 몇 번 들켜서 호되게 야단맞았던 추억도 함께. 명절 때 모인 어른들이, 화투 치던 것을 옆에서 구경하려던 애들에게 "이런 것 배우면 못쓴다"며 쫓아냈고 화투는 손대면 큰일 나는 것으로 알았다. 화투는 건전한 게임이라기보다는 도박과 같은 사행성 게임으로 경원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만화ㆍ애니메이션 산업이나 게임산업이 반도체, 조선산업을 대체하는 우리나라의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만화ㆍ애니메이션의 전세계 시장 규모는 조선산업보다 크다. 따라서 세계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한국 조선산업만큼 만화ㆍ애니 산업이 해준다면 국익에 엄청난 보탬이 될 것이다. 조선산업의 시장점유율을 올리려면 수십만 톤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대형 독(dock)과 골리앗 크레인 등 엄청난 규모의 시설 및 장비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만화나 게임산업은 뛰어난 기획 및 창작 인력만 있으면 우수한 콘텐츠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 지금까지 20조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온 일본의 '포켓 몬스터'를 만들기 위해서 수십만 평의 산업단지와 거창한 설비가 필요하지 않다. 소수의 우수한 창작 인력과 이들이 작업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만 있으면 된다.
자녀를 둔 웬만한 가정에 하나 정도 있는 닌텐도 게임기를 개발한 회사는 예전에 화투를 만들던 회사였다. 닌텐도의 한자어는 任天堂(임천당)으로 글자 뜻대로 보면 하늘에 운을 맡기는 것, 즉 화투를 만드는 집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닌텐도는 세계적 기업으로 운을 하늘에 맡기지 않고 자신들의 창의력으로 새로 개척하며 게임산업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세월이 많이 바뀌어 지금은 만화, 게임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고등학교가 생겼고 대학에는 무수한 관련학과가 개설돼 있으며 실제로 매년 상당한 수의 전문인력이 배출되고 있다. 전에는 숨어서 보던 만화가, 몰래 즐기던 게임이 이제는 학교에서 정식으로 가르치는 과목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만화는 공부시간을 빼앗아 가는 원흉이고 청소년의 건전한 정서발달에 방해가 되며 게임은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사행성, 중독성 요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만화나 게임을 경원시 하며 청소년 시대를 보냈던 세대가 그런 것 같다.
올해 게임분야 해외 수출액은 작년의 100억 달러에서 50% 증가한 1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 전망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상품인 반도체나 선박과 달리 이러한 문화 콘텐츠 제품 수출은 10배 이상의 실제적 부가가치를 우리나라에 떨어뜨려 준다. 외국 기술을 수입할 필요도 없고 장비를 들여올 필요도 없이 순수한 국산 인재만 써서 개발하면 되기 때문이다.
잘 아는 것처럼 일본의 만화ㆍ애니메이션, 게임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1위인 것은 내수 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일각에서 게임산업의 사행성 규제 명목으로 여러 가지 제한조치를 취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국내 게임산업 판도는 2005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엄청난 변화를 맞아 사행성 위주의 아케이드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주종이 바뀌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조해 업계 자율로 사용시간제한, 구매비용제한, 직접거래에 의한 게임머니 충전제한 등 여러 조치가 취해진 상태다. 아직도 바다이야기를 떠올리며 게임의 사행성 얘기를 하는 것은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 같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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