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눈으로 보고 속은 술로 본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 사람이 모이는 데 술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그러니 한 해의 인맥 농사를 마무리하는 연말연시가 되면 술을 먹다가, 술이 술을 먹고, 결국 술이 사람을 먹는 지경이 된다. 인맥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도록 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술은 마실수록 는다?
어느 정도 맞다. 술을 매일 2주 정도 마시면 간의 에탄올 분해 능력이 30% 정도 늘어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뇌세포의 신경화학적 변화로 인해 뇌세포가 고농도 알코올에 내성이 생겨 알코올 중독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술이 세질수록 알코올성 간질환의 위험도 높아지니, 남보다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은 자랑할 일도 부러워할 일도 아니다.
▦숙취해소제 도움된다?
효과는 약간 있지만 과신은 금물이다. 대표적인 숙취 해소 성분인 아스파라긴산은 알코올 분해를 촉진하고 독성 물질 농도를 낮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명확히 입증된 바 없다. 숙취는 알코올 절대량이 많고 저혈당과 탈수 현상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기본적으로 알코올 섭취를 줄이지 않으면 효과가 별로 없다.
▦해장국 숙취해소 도움된다?
술을 빨리 깨려면 전해질이 풍부한 얼큰한 국물이나 과일주스, 이온 음료(스포츠 음료)를 마시는 것이 좋다. 알코올 대사 산물이 콩팥에서 소변으로 빠져나갈 때 다량의 전해질(이온)이 함께 빠져나가 숙취 현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또 숙취를 없애기 위해서는 신체 활력을 높이는 당분 섭취가 중요하므로 식혜나 꿀물 등을 마셔도 도움된다.
▦음주 전 우유나 제산제를 먹으면 덜 취한다?
음주 직전 우유를 마시면 우유가 인슐린 분비를 억제해 뇌가 빨리 포만감을 느끼므로 결과적으로 술과 안주를 덜 먹게 만든다. 또한 우유 속에는 간의 알코올 성분 분해를 돕는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등이 들어있다. 그러나 음주 전에 제산제 계통의 위장약을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위 점막을 보호하지만 위벽에 있는 알코올 분해 효소 활동까지 막아 숙취를 더할 수 있다. 게다가 간이 술과 약, 두 가지를 분해하는 효소를 한꺼번에 만들어야 하므로 간에 더 부담이 된다.
▦토하거나 냉수ㆍ커피를 마시면 숙취해소에 도움된다?
찬물과 커피를 마시거나 토하면 덜 취하는 듯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찬물을 마시면 알코올 섭취를 줄일 수 있고 혈중 알코올 농도를 어느 정도 떨어뜨릴 수 있으나 전해질 성분이 없어 효과가 크지 않다. 커피도 카페인 작용으로 일시적인 기분 상승 효과는 있지만 알코올 작용을 낮추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뇨작용이 생겨 오히려 체내 수분을 더 방출한다. 토하면 알코올로 인한 위장장애가 어느 정도 해소돼 술을 깨는 느낌이 들지만 효과는 별로 없다. 알코올은 위에서 10% 정도만 흡수되고 90%는 작은 창자에서 흡수된다. 게다가 술 같은 액체 성분은 30분 정도면 작은 창자로 넘어가므로 술을 마실 만큼 마시고 토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한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면서 식도를 손상할 우려가 있다.
▦술 먹고 얼굴이 빨개지면 건강하다?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면서 가슴이 뛰고 진땀이 나며 구토와 두통, 현기증, 저혈압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심하면 뇌 손상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으므로 음주를 삼가야 한다. 알코올 분해 효소는 후천적으로는 생성되지 않는다. 서양인보다는 동양인이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의 30%가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다.
▦안주를 많이 먹으면 좋다?
그때그때 다르다. 안주는 술을 해독하고 몸을 보호하며 위장과 간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안주를 통해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알코올을 분해하는 간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눈총이 정히 무서우면 술을 마시기 한두 시간 전에 미리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포만감으로 알코올 섭취량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안주도 있다. 바로 삼겹살이다. 지방은 알코올 대사를 방해하고 술이 지방이 돼 복부 지방으로 고스란히 쌓인다. 반면 안주로 좋은 것은 과일이다. 탄수화물이 몸 속으로 들어오면 췌장에서 혈액 속 당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인슐린을 분비하므로 간의 과부하를 막을 수 있다. 이 밖에 치즈ㆍ두부ㆍ고기ㆍ생선 등 저지방 고단백질의 안주는 간세포 재생을 촉진하고 알코올 대사 효소의 활성도를 높인다.
■ 음주 시 반드시 피해야 할 금기사항
▦술 마시면서 담배 피기=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면 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알코올과 니코틴 등 독성물질이 체내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 음주 시 담배를 피면 식도암에 걸릴 가능성은 30배, 후두암ㆍ구강암은 10배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폭탄주와 파도타기= 폭탄주는 2배의 알코올을 한꺼번에 마시므로 해독작용을 하는 간에 무리를 줄 뿐만 아니라 미처 해독되지 못한 알코올로 인해 위경련이나 쇼크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종류가 다른 술을 섞으므로 중추신경계를 교란해 숙취도 더 심하다. 또한 단시간에 많은 술을 마시는 파도타기도 금물이다. 술은 도수가 낮은 술부터 시작해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마시는 게 좋다.
▦술잔 돌리기= 술잔을 돌리다 보면 A형 간염,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등 수인성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때문에 요즘은 잔을 물에 헹궈 돌리기도 하지만 예방책은 못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일러스트=김경진기자 jinj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