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행복을 찾아서> 는 불행에 관한 영화이다. 무일푼의 의료기 판매상 크리스 가드너는 송곳 세울 작은 방 한 칸도 없어 어린 아들과 간이역 화장실에서 몸을 누이고 하루하루를 전쟁 치르듯 산다. 그는 거리의 인파 속에서 "어쩌면 행복이란 오직 추구할 수만 있는 것, 평생 무슨 일을 하던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마치 담벼락에 누군가 휘갈긴 낙서'happyness'의 'y'가 사실은 'i', '나'여야 하는데 '너(you)'로 써있는 것처럼. 행복을>
천신만고 끝에 주식중개인 인턴에 합격한 날, 그는 "이 짧은 순간의 제목은 바로 행복"이라며 박수를 친다. 자신만 들을 수 있고, 자신만을 위해 바친'행복'의 박수이다.
새해 달력과 수첩을 받아 드니 자연스럽게"어떤 컨셉으로 한 해를 설계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창조, 몰입, 성취, 여러 개념이 떠 오르지만 내년에는 정말 행복을 향해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만큼 올 한해는 전직 대통령의 자살부터 세계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행복지수가 많이 저하될 수 밖에 없었다.
심리학자 리처드 스티븐스는 행복이란 단기적으로는 잘 살고 있다는 느낌, 좋은 느낌과 긍정적인 마음, 활기 넘치는 생활, 인생에서 가치 있는 선택을 한다는 의미 부여 등을 꼽고 있다. 도박이나 마약 같은 것들도 기쁨을 주지만, 그것은 단순한 쾌락으로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나 활기, 의미 등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쾌락을 금기시하는 너무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쳐 왔다. 1990년대 들어 안네 폰 블롬베르크 같은 심리학자는 인간의 행복을 지수화하여 HQ 라 부르면서, 흥분과 스릴이야 말로 행복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운동하고 경쟁하고 속도를 즐기며 젊은이로 살 것을 권유하고 있다.
놀랍게도 행복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에는 상식을 뒤엎는 것이 많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가 최근 연구한 결과를 보면 20~24세 사람들이 한 달 중 우울한 기간은 평균 3.4일인 반면, 67~74세의 사람들은 2.3일에 불과했다. 또한 뇌졸중이나 쇠약성 질병을 앓는 사람들은 단기간에 엄청난 고통을 받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대다수 사람들이 느끼는 수준에 약간 못 미칠 뿐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행복의 문제는 나이나 질병, 돈의 유무에 상관없이 세상 모든 일처럼 행복하게 살려는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독일 등 39개 국가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66점으로 39개 국가 중 28위였다. 세계 평균 69점에 못 미쳤고,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보다도 행복하지 않다.
소설가 임레 케르데스는 아우슈비츠 생활을 그린 <운명> 에서 주인공 소년의 입을 통해 고된 수용소 생활에서는 수프 한 그릇에도 행복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다사다난 했던 2009년이 저물어 간다. 우리 정치인들은 자신과 당이 아닌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는 하는 것일까? '국민총생산지수'가 아닌 '국민총행복지수'를 높이려는 이들이 여의도와 청와대에 많아지기를 바란다. 로또 당첨 같은 행운의 광풍에 휘말리기보다, 땅 밑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지랑이 같이 작은 것들에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운명>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 사이버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