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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잉카문명 이야기] <1> 페루 문명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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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잉카문명 이야기] <1> 페루 문명의 시작과 끝

입력
2009.12.0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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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개막하는 '태양의 아들, 잉카' 전을 한국일보와 공동 주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최광식 관장이 잉카문명이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장인 페루 지역을 지난 9월 둘러보고 돌아왔다.

최 관장이 취임 이후 가장 힘을 쏟은 일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 문명전 시리즈' 개최와, 해외 유명 박물관에서의 한국유물전 개최다. 박물관은 전 국민의 '공공 놀이터'이자 '살아있는 교육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강제로 동원된 박물관 관람과 암기 위주의 사학 교육이 즐거운 역사 배우기와 박물관 관람을 방해하고 있다. 이제 박물관이 제 기능을 할 때가 됐다"고 역설한다. "해외에 가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볼 수 있는 세계 주요 문명의 보물들을 전 국민이 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반대로 외국에 한국유물을 전시하는 기회의 확대를 통해 균형을 맞추려고 합니다." '세계 문명전 시리즈' 세번째 전시인 '태양의 아들, 잉카' 전도 이 같은 의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최 관장은 페루 현지에서 잉카문명 유적지 답사와 함께 '태양의 아들, 잉카' 전 전시 유물을 대여해준 기관들을 두루 방문했다. 최 관장이 전시 개막에 맞춰 잉카문명사 및 유물에 관해 기고한 글을 이번주부터 매주 목요일자에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정말로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대학 시절 잉카문명이 세계 6대 문명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언젠가 한번 꼭 가서 직접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36년이 넘게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LA미술관으로부터 한국미술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LA에 가는 차에 잉카문명이 서려있는 페루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신종 플루가 유행하고 고산증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마추픽추를 보고 싶다는 열망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비행기 창을 통해 보이는 웅장한 안데스 산맥으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않기도 전에 현장에 도착해서 본 쿠스코와 마추픽추의 거석문화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잉카는 1430년 이후 약 100년 간 중앙 안데스를 중심으로 제국을 다스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잉카문명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천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5,000년 전 고대 제사 유적인 카랄을 비롯하여 기원 전후의 강력한 모체 왕국, 그리고 신비의 나스카 문화가 있었다. 또한 와리 제국과 치무 왕국 등은 이후 잉카제국이 세워질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안데스 지역의 구석기시대는 1만 2,000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6000년 전부터 초기 농경생활을 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며 살던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발견된 선사주거지와 같은 주거지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1800년부터 고대문명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농경의 발전, 토기의 제작, 방직술의 발명, 노동 분화에 의한 도시의 중심 건축 등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집약적인 농경이 확산되었으며, 많은 종류의 곡식이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농업경제는 마을을 이루게 하였으며, 잉여생산물을 갈무리할 수 있는 토기 제작으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 챠빈문화(기원전 1200~300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화의 조각품들이 발굴되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건축물들이 나타나고, 제사장이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자로 등장한다. 마치 고조선의 단군왕검이 제사와 정치를 모두 주관한 제정일치적 존재인 것과 같은 것이다.

한편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는 여러 지역에서 문화들이 발전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모체문명(기원전 100년~기원후 700년)이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종교와 제의에 관한 자료들이 나타나며 권위를 나타내는 건축물들도 등장한다. 페루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이 시기의 다양한 토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토기의 문양들이 매우 다채로웠다. 이 시기 황금유물을 간직한 시판왕 무덤 유적의 유물과 순장 흔적은 사회적 계층화의 진전과 국가 형성을 증명한다. 같은 시기의 스카문화(기원전 100년~기원후 600년)는 지상회화의 성격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와리제국(600~900년)은 여러 지역에서 발달된 문화가 일단 통합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도시가 정비되고 종교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장례를 통하여 문화를 전수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세기가 되면 다시 지역으로 분할되어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람바이예크문화, 치무문화, 잉카문화 등 10여개의 지역으로 세력이 분화되고 문화가 각각 발전되어 나갔다. 그러다 15세기(1430년)에 4지역 세력의 연맹체인 잉카제국이 성립풔?것이다.

잉카는 해발 3,400미터에 있는 쿠스코를 수도로 하여 4개 지역 연맹세력을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였다. 도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삭사이와망 유적은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신전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모양새를 보면 군사적 요새의 역할도 담당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꿈에 그리던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종교적 중심지로서 고대 한반도 삼한의 별읍인 소도(蘇塗)를 연상시켰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잉카문명에서 한국 고대의 문명과 많은 유사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예상 밖의 수확이라 하겠다. 고대의 왕권과 제사와의 관계, 제사유적과 군사유적의 복합성, 태양신 숭배 신앙과 산신신앙과의 관계 등이 우리의 것과 너무 닮아 한국 고대문명의 유적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다음 회부터는 그 타임머신을 타고 안데스의 고대문명과 잉카문명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볼 작정이다.

■ 프리 잉카와 잉카문명

우리는 잉카문명이라고 하면 흔히 안데스 지역의 고대문명을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잉카제국은 15세기(1430년)에 성립되어 16세기(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에 의해 멸망 당할 때까지 약 100년 정도 존속한 왕국이다.

그러나 서구에 잉카문명으로 알려지면서 이 지역의 문명을 대표하는 용어처럼 정착됐기 때문에 안데스 지역의 고대문명을 통상 잉카문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조선 왕조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존속하였지만 이 시기에 한반도가 서구에 알려졌으므로 조선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문화 전체가 조선의 문화라고 소개된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잉카 이전의 프리 잉카 시대에도 '태양의 아들'이라는 신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4개 지역의 연맹으로서의 잉카제국 이전의 문명을 모두 잉카문명이라고 하여도 틀린 것은 아니다. 정치적 의미의 잉카는 15~16세기의 잉카제국을 뜻하지만, 문화적 의미로는 태양의 신화를 가진 안데스의 고대문명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잉카는 협의로는 15~16세기의 잉카제국을 뜻하지만, 광의로는 잉카제국 이전의 안데스 지역의 고대문명 전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양의 신화를 가진 잉카문화는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하겠다. 태양과 함께 항상 달이 짝을 이루며 숭배의 대상이 되어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이 공존한다. 그 문화는 음과 양의 조화, 중앙과 지방의 조화, 잉카문화와 서구문화의 조화를 이루며 현재 페루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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