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개봉 예정인 영화 '식객2: 김치전쟁'(감독 백동훈)은 광주시(3억원)와 경북 상주시(9,800만원), 영덕군(4,000만원), 의성군(1,000만원)으로부터 제작비 4억 4,800만원을 지원받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이 영화 제작비 30억원의 10분의 1 이상을 분담한 셈이다.
지원 조건은 단순했다. 광주 김치문화축제와 상주 곶감, 영덕 대게, 의성 흑마늘 등을 영화에 자연스레 담아주는 것이었다. 제작사 이룸영화사는 광주와 상주시, 영덕군에서 촬영하며 지원받은 돈을 모두 그 지역에서 소진했다. 지자체로서는 특산물 홍보도 하고 지역경제에도 이바지했으니 일석이조, 제작사는 충무로의 돈줄이 마른 요즘 영화 내용을 훼손하지 않고 제작비 일부를 조달할 수 있었으니 매부 좋고 누이 좋은 격이다.
이처럼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충무로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불황 때문에 충무로 투자자들이 지갑 열기를 주저하고 있는 실정에서 영화 만들기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난히 돈 가뭄에 시달리는 예술영화, 작가주의 영화에 공공기관의 문화 관련 예산은 단비가 되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로 내년 1월 촬영에 들어가는 '달빛 길어 올리기'의 주요 전주(錢主)는 전북 전주시다. 예상 제작비 20억원의 30%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댄다. 영화는 한지에 빠져든 7급 공무원 종호(박중훈)을 통해 우리것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내용인데, 한옥과 한식 등 지역의 전통문화를 상품화하려는 전주시로선 최상의 홍보창구를 찾은 셈이고, 노장 임 감독은 든든한 후원자를 만난 것이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 관광개발진흥기금 8억원의 혜택을 입었다. 서울, 부산, 인천, 춘천, 제주의 풍광을 각각 담은 '서울'(감독 윤태용), '그녀에게'(감독 김성호), '시티 오브 크레인'(감독 문승욱), '뭘 또 그렇게까지'(감독 전계수), '여행'(감독 배창호) 등 5편이 그 수혜자다. 이 프로젝트는 뛰어난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작업이 뜸했던 5명의 감독에게 숨통을 터줬다는 평가가 많다. 문승욱 감독은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았지만 상당히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었다"며 "비슷한 기회가 많아져 한국영화의 새 돌파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국내 첫 다국적 옴니버스 영화인 일명 '부산 프로젝트'도 부산시가 후원자로 나섰다.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일본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시티즌 독'의 태국 감독 위시트 사사나티엥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의 제작비는 총 15억원. 부산시는 5억원을 내놓으며 도시 브랜드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제작사 발콘의 오석근 대표는 "부산시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영화가 부산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공기관의 잇따른 투자에 대한 영화계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지자체 문화 관련 예산이 일회성으로 눈 먼 돈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는 남는 것"이라며 "지자체 홍보를 무리하게 강요하거나 공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다면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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