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이 세상에서 주전 멤버는 아니었다. 어쩌면 실점의 위기를 막아내야 할 수비수이기도 했다."
한승헌(75) 변호사가 자서전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한겨레출판 발행)을 냈다. 그는 이곳에 현대사의 굵직한 고비마다 변호인으로, 더러 피고인으로 무도한 권력에 맞서 싸운 일생을 세세히 기록했다. 한>
동백림사건, 긴급조치, 인혁당사건,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등의 기억으로 채워진 400여쪽의 책은 반독재ㆍ민주화 시대의 실록에 가깝다. 8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한 변호사는 그러나 "그저 한 촌놈의 행상기(行狀記)"라며, 행여 이 책으로 자기 삶을 '금칠'하게 될까 저어했다.
1934년생 개띠, 그 나이 연갑내기들의 삶이 으레 그랬듯 가난, 전쟁, 고학의 세월이 책의 앞부분을 채운다.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검사의 길을 걸을 때까지는 그의 삶도 비교적 양지에 속했던 편. 그러나 65년 변호사가 되어 남정현의 소설 <분지> 필화사건을 맡는 것을 시작으로 그는 '시국사건 전문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수십 년 이어진 어둠의 시대는 그를 동시에 '패소 전문 변호사'로 만들었다. 분지>
"박해 받는 사람을 외면했다가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받을까봐" 시국사건 수임을 뿌리칠 수 없었다는 한 변호사는 "흔히 피고인은 변호사를 잘 만나야 한다고 하는데, 변호사가 피고인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게 내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음지 속에서 정신적으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한 인간으로서 성숙했으며, 보람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시국에 대해 "근대적 법치주의란 본래 권력자를 견제하기 위한 상향적 개념"이라며 "위에서 아래로 (하향적) 법치주의를 강요하는 지금 권력자들은 법치주의를 오해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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