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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 칼럼] 대통령 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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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 칼럼] 대통령 동정

입력
2009.12.09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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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중요한 일도 보도되지 않으면 잊히고, 별 것 아닌 일도 '뉴스'화되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곤 합니다. 언론의 취사선택이 특별히 중요합니다. 요 몇 달 언론 보도 속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이 하는 일과 하지 않는 일이 나라의 현 주소를 말해줍니다.

'실세' 이재오 행보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 '실세'로 불리는 이재오 씨는 9월 30일 임명되자마자 "억울함이 없는 나라,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10월 1일 서울 고척시장에서 시작한 '국민권익 1일1현장'행보는 재개발 현장, 중고차 매매시장, 버스회사, 경찰병원 등을 거쳐 전국으로 이어져, 취임 후 두 달 동안 찾은 현장이 112곳이라고 합니다.

이 위원장은 실세라고 불리길 싫어한다지만 실세로 보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10월엔 경기 양평군 화전리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다가 경기도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148억 원이 소요되는 포장공사를 따냈고, 지난달엔 48년 동안 미해결로 남아있던 속초비행장 일대의 고도제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 위원장이 찾아갔던 현장의 절반은 미혼모 요양소, 노숙자 쉼터 등 소외계층을 위한 곳이었다니 실세든 아니든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이 대통령도 이 위원장 못지않게 분주했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대통령 동정'난을 보면 칠순이 가까워오는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나라 안팎에서 얼마나 정력적으로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국가지도자들을 방문하거나 초청하고 G20, G8, 아세안 정상회의 등 수많은 정상모임에 참석하면서도 나라 곳곳으로 '서민 행보'를 옮겼습니다.

이달 들어서도 대통령의 발걸음은 그치지 않습니다. 2일엔 철도공사 상황실을 찾아 철도노조 파업에 단호하게 언급했고, 영호남을 오가며 시장 수제비로 점심을 하고 굴비를 샀습니다. 고위 인사들 중에도 이름뿐인 사람들이 있지만 이 대통령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지금 지구상에서 이런 식으로 파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일갈하자 바로 다음 날 노조가 파업 철회를 한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두 분의 행보를 지켜보면 피할 수 없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왜 '서민'과 '국민 권익'을 강조하는 분들이 용산참사 현장엔 가지 않는 걸까? 외부 인사가 국내 문제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거슬리지만 지난 달 서울을 다녀간 국제엠네스티 사무총장 아이린 칸의 얘기엔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 칸은 2010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사실이야말로 한국의 힘을 보여준다며, 한국 정부가 하루 빨리 용산 사건에 대한 대화를 시작해 해결책을 도모해야 이 문제가 공정하게 끝맺음 되고 한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 용산 방문을

재개발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여섯 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일어난 지 곧 1년입니다. 설 목전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올 설날을 잃어버렸던 유족들이 내년 설이나마 제대로 쇨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에 보를 쌓고 도시를 건설하는 건 날씨가 풀린 다음에 해도 되지만,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는 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으니까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17일 코펜하겐으로 떠날 이 대통령이 출국 전에 용산을 방문하면, 객지에서 맞을 생일(18일)을 축하하는 국민이 많을 겁니다. 이재오 씨가 속초와 양평에서처럼 용산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진정 소외계층의 권익을 생각하는 '실세'위원장으로 오래 기억되고 존경받을 겁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에서 '대통령 동정'과 '위원장 동정'까지, 모든 언론이 선택의 고민 없이 기쁘게 보도할 '뉴스'다운 뉴스를 오랜만에 보고 싶습니다.

김흥숙 시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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