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그저 두 발로 마음껏 뛰고 싶었던 소박한 꿈이 깨졌다는 사실만 인지할 수 있었을 뿐, 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현실의 무게감을 가늠할 길은 없었다. 그러기엔 당시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부모님으로부터) 세 살 때였다고 전해 들었어요. 열병으로 소아마비가 와서,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목발을 사용했답니다. 지금까지 두 발로 온전하게 걸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웃는 얼굴로 어릴 때 기억을 꺼내 전했지만, 황준선(43ㆍ지체 장애 2급) LG전자 여수서비스센터 서비스엔지니어 팀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 왔다.
전남 여수 앞바다의 조그만 섬(하태리) 마을 소년의 성장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장애가 시작된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제 처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황 팀장이 가진 커다란 자산이었다.
황 팀장은 LG전자 서비스센터 내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자수성가형'맥가이버'로 통한다. 실습생 신분으로 LG전자에 입사(1987년), 89, 90년에 열린 전국 장애인 기능경기대회(라디오, TV 수리 부문)에 출전해 연거푸 1위를 차지하면서 일약 사내 기능인들의 롤모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비춰지는 태생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어요.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신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대우를 받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싶었습니다." 힘들었던 지난 날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황 팀장의 이런 고집에서 시작된 셈이었다.
쉽게 보였지만, 명장 직함을 명함에 넣기까지 그가 보내 온 40년 세월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공부보다는 타고난 손재주를 밑천으로 실업계에 맞춰 진로를 선택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주변환경이 그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의 하체에 먼저 고정됐고 금새 동정 어린 눈빛이 흘러나왔다. '나를 바라보는 저 시선들을 반드시 바꿔 놓고 말겠다'는 그의 다짐은 이내, 오기를 넘어선 독기로 변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자극제로 작용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재활원을 겸한 직업훈련센터에 들어간 그는 1년 만에 아마추어무선, 전자제어 및 무선설비 기능사 자격증을 잇따라 취득했다. 일반인들과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86년 9월)에 나가 수영 부문 평형 종목에서 금메달도 따냈다.
그렇게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을 이어가면서 사회 진출 준비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갔지만, 예상대로 그를 반겨주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자격 요건은 괜찮았지만, 취업 문은 열리지 않았어요. '결국 안 되는구나'라는 좌절감이 저절로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열등감과 우울증에 빠져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 그 무렵(87년 4월), 평소 열정적인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으로부터 LG전자 여수고객센터 실습생 입사 제안 소식을 접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뻤어요. 누군가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으니까요." 두 달에 고작 9만원에 불과한 월급이었지만, 그런 조건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그는 매일 새벽 6시30분에 회사 문을 열고 청소부터 시작하며 일을 배워갔다. 선배들이 떠난 밤이면 늦게까지 남아 기술 연마에 몰두했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기를 6개월. 입사 초기, 다소 껄끄러운 눈으로 그를 지켜봤던 사내 직원들의 태도는 조금씩 누그러졌고 사무실 분위기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끝없는 열정과 성실함 덕분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실습생의 신분은 계약직으로 바뀌었고, 2005년 5월 정규직으로 발탁했다. LG전자가 사내 우수 서비스 기능인력에게만 수여하는 'LG전자 서비스 명장'(2006년, 08년, 09년) 타이틀도 획득했다.
육체적인 불편함을 극복하고 어엿한 명장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까지도 편협한 시각으로 기능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작은 힘이지만 그가 먼저 나서 이런 인식을 돌려 놓고 싶다는 생각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단순히 기계만 고친다는 생각으로 TV나 라디오를 수리를 하지는 않아요. 보다 더 친절한 서비스로 기능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들도 함께 치료하려고 합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 LG전자 한국서비스 아카데미실
LG전자는 서비스 기능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교육체계 수립 및 과정 개발,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LG전자 한국서비스 아카데미실'을 운영하고 있다.
1987년 부산을 시작으로 현재 호남, 경북, 충청, 중부, 서울 등 주요 거점 지역에 설립된 이 아카데미실에선 주로 숙련된 서비스엔지니어를 육성하고 있다. 또한 서비스 기능인을 대상으로 LG전자의 문화와 서비스 직무에 대한 이해, 고객 응대력, 제품 수리 기술 등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 양성된 서비스 기능인은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LG전자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 감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각 프로그램은 교육생들의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9.5점 이상이 나올 정도로 만족도가 높으며, 교육 시작 전 사전평가와 교육 종료 후 사후 평가를 통해 교육생이 스스로 실력 향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LG전자는 또 LG전자 서비스의 비전 제시와 고객 신뢰 이미지 구축을 위해 2001년도부터 매년 '서비스 기술 올림픽'을 실시하고 있다.
전국에서 예선을 통해 각 제품별(전기, 전자, PC, 에어컨, 휴대폰) 우수 인력을 선발, 본선에서 총 35명이 경합을 벌인다. 본선에서 제품별로 금은동상이 수여(각각 5명)되며 금상 수상자 5명은 대명장으로 선발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LG전자 한국지역본부 한국서비스 아카데미 실장 김기남 부장은 "역량별 맞춤 교육을 강화 및 기술력, 설명력, 관리력의 세 가지 핵심 역량 향상을 통해 우수한 서비스 기능인 확보 및 육성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 LG전자/ 미래 인력 양성 위해 전국 15개 대학과 산학협력 강화
LG전자는 감성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기능인재를 키우기 위해 산업 인력 양성 기관으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교육기관과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02년 동서울 대학을 시작으로 현재 동양공전, 제주산업정보대학, 마산대학 등 전국 15여 개의 대학과 산학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방침에서다.
LG전자는 매 학기 초 산학협력 대학생을 대상으로 서비스직무 특강 및 서비스 엔지니어 양성 계획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방학 기간을 활용해 산학협력 대학생을 대상으로 현장실무적응역량을 향상시키고자 약 2개월간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실습을 통해 서비스 기능 인재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학생은 'LG전자 한국서비스 아카데미'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교육과정을 이수한 교육생에게는 취업 기회도 주어진다.
산학협력 활동을 통해 LG전자서비스센터에 입사한 직원들은 서비스직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고객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LG전자 한국지역본부 한국서비스 담당 조철제 상무는 "앞으로도 산학협력 대상 학교를 지역별로 꾸준히 확대하고 산학협력 대학생에게 보다 많은 지원과 혜택을 늘려 서비스 기능인 조기 발굴 양성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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