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한 인터뷰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정진석(78ㆍ니콜라오) 추기경은 글쓰기를 '욕망에 맞서 사제의 계율에 충실하기 위한 신앙적 방편'이었노라 밝힌 바 있다. 정 추기경은 신학교 다니던 1955년, 하느님 뜻을 좇아 순결을 지키고자 숨을 놓은 이의 삶을 기리는 <성녀 마리아 꼬레띠> 를 번역해 단행본으로 출판한 이래 지금껏 50여 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출간했다. 성녀>
새 책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가톨릭출판사 발행) 출간에 맞춰 8일 서울 명동의 천주교 햇빛>
서울대교구 주교관 집무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 추기경은 "글쓰기가 취미"라 했다. "좋아서 몰두할 수 있는 일, 그게 취미 아닙니까? 글을 쓸 땐 아무런 잡념 없이 편안해집니다." 번민을 이기기 위한 절박한 기도로서의 글쓰기가 50년 넘는 세월을 지나오며 아예 삶의 일부가 됐다는 의미일까.
40년 전 출간한 첫 수필집 <목동의 노래> 의 후속작이라 소개한 새 책에서 정 추기경은 자연과학 시대의 하느님에 대한 단상과 천주교 교리의 가르침을 일상의 이야기 속에 녹여 전한다. 그 자신도 연출자인 하느님이 맡기신 추기경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일 뿐이라며 신자들 각자에게 소명을 일깨운다. "연극이 끝나 배우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면 모두 평등한 배우로 돌아갑니다. 그때 그 배우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주연을 맡았더라도 반드시 명 배우의 명예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46쪽) 책에는 올해가 출생 100년이 된다는 어머니 이복순 루치아(1996년 작고)에 대한 단상 등 사적인 이야기도 담겨 있다. 목동의>
_ 책에 특별히 담고자 하신 메시지는.
"국민 모두의 마음이 평온했으면 좋겠어요. 가족들부터 오순도순 지내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라는 말보다 먼저 서로 이해하라고, 서로의 가치와 장점과 고마움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서로 인정하면 이해하고 협력하게 되고, 그러면 사랑하게 되죠."
_ 세상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모범을 보여야 할 분들이 모범을 보여줬으면 해요. 사회지도층의 진정성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합니다. 왜 다툴까요? 진정성이 없으니까, 유인하듯 말만 번드레하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그러니 다툼이 필연적으로 개입합니다. 어수룩한 듯해도 국민들은 다 압니다. 애기들도 알아요."
_ 용산참사 어찌 보시는지요.
"공동체 삶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정의지요. 그러자면 합의된 계약이 필요하고, 법이 필요합니다. 물론 완전무결한 법이란 없겠지요. 하지만 용산참사를 보면 법이 미흡해요. 너무나 미흡해요. 법이 덜 미흡할수록 갈등이 적어지죠. 우리가 법의 미흡함, 미비함을 안 지는 꽤 오래 됐어요. 재개발만 하면 늘 다툼이 있었잖아요. 그렇다면 법을 제대로 갖췄어야죠. 또 억울한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못 받고 있어요. 그게 용산참사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책 얘기하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던 정 추기경의 얼굴은 용산참사 얘기가 나오자 사뭇 굳어졌고, 목소리도 무겁게 이어졌다. "입법기관이 해결해야 합니다. 법 잘 갖추라고 특권도 주면서 대우한 것 아닙니까? 대우 받은 만큼 국민을 위해 봉사했으면 좋겠어요. 안타깝습니다. 그 분들(참사 희생자와 유족들) 매일 잊지 않고… 잊을 수가 없죠… 기도합니다. 거기 우리 신부님들도 가 계신데, '폭력은 안 된다, 어떤 어려움 있더라도 선한 방향으로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해달라, 그분들께 위로하는 말씀 많이 드려라' 말씀 드렸습니다. 아쉬움 많지만 행복한 마무리를 위해 힘 합쳐야죠."
_ 새해 소망이 있으시다면.
"지금껏 말씀 드린 게 모두 제 소망입니다. 행복의 근원은 마음이죠. 다들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고, 물질적으로도 덜 아쉬웠으면 좋겠고…, 감사합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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