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를 둘러싼 공방이 점점 더 가열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회사가 과거 재벌총수를 연상시키는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며 지주회사 지배구조개편을 압박하고 있고, 이에 대해 은행권에선 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정부가 관치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7일 관계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지주사의 최고 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사외이사 연임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모범 규준'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지주사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당국이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셈.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가 금융회사에 대해 특정지배구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과 함께, 세부 각론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견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특히 금융지주사 지배구조개편은 국내 '빅4' 가운데 정부소유인 우리금융지주를 뺀, ▦라응찬 회장이 이끄는 신한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이 맡고 있는 하나금융지주 ▦강정원 회장후보 선임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던 KB금융지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어,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지배구조 바꿔야 하나
금융지주사 지배구조개편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당국이 '밑그림'을 그려, 지주사들에게 일괄 적용하는 방식 자체가 옳으냐의 문제다.
정부 소유의 우리금융지주나 산은금융지주라면 몰라도 순수 민간기업인, 더구나 외국인 주주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반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를 정부가 특정방향으로 요구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금융지주사들이 '신관치'라고 반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지배구조는 결국 주주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며 "KB금융지주 회장선거 과정에서 보듯이 금융당국이 오히려 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자율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당국이 내놓은 지배구조개선안에 대한 세부 아이디어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면서도 "다만 이를 일괄적으로 강제하기 보다 지주사 현실에 맞게끔 사안별로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미 지주사들도 지배구조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사회 의장-지주 회장 분리는
이사회는 경영진 및 집행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 그러나 현재 금융지주사들은 지주사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장기간 겸임함으로써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지 않고, 사실상 '1인 장기집권'으로 가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따라서 이사회 본연의 기능을 되살리려면, 지주사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KB금융지주를 제외하고 신한, 우리, 하나금융은 지주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감시 기능을 강화하자는 측면에서는 분리가 정답일 수 있지만 신속한 의사결정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현 국내 금융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또 지주사 회장이 은행장 등 계열사 CEO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국내 지주사 사정을 감안하면 분리는 더욱 더 시기상조다"고 말했다.
강윤식 지배구조센터 선임연구원도 "일반 상장법인의 경우 이사회 의장-CEO(회장) 분리가 주주가치 향상에 좋은 지배구조임에는 분명하지만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지주사 회장들의 장기 집권화에 대해서도 실적이 뒷받침되고 주주 가치를 훼손하지 않은 만큼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의 경우 경영성과만 좋으면 여러 차례 연임을 하는 것이 관례다"며 "단순히 CEO의 재임기간이 길다고 지배구조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문제를 삼을 수 없다"고 전했다.
사외이사 개선은
어떤 형태로든 현 사외이사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선 당국이나 전문가들이나 차이가 없었다.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 경영진을 견제하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했다. 예컨대 ▦신한, 우리, 하나지주 같이 사외이사 독립성이 별로 없어 경영진 견제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든 ▦KB지주처럼 사외이사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 문제가 생기는 것은 모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당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외이사들의 임기를 제한하거나 이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일정 시기마다 교체하기 보다는, 주주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 4대 지주사 중 주주대표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 이사회가 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김선웅 소장은 "이사선임 과정에서 주주 대표권를 확보하는 것이 이사회 독립의 핵심"이라며 "주주들이 일정 지분만 넘으면 사외이사를 선임하거나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경서 교수도 "지주사들의 실제 대주주들은 외국인이거나 기관투자가들인데 이들이 적극적으로 주주대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이 이사 선임에 관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줘야 이사회가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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