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자정 무렵 서울 중구 명동 거리. 회식을 마친 직장인 A(29ㆍ여)씨는 남성기사가 모는 택시가 껄끄러워 서울시 지정 브랜드 콜택시가 제공하는 '여성기사 서비스'를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콜센터 여직원은 "알아는 보겠지만 여성기사는 배차간격이 많이 떨어진다"며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딱히 대안이 없어 기다려 보기로 한 A씨는 5분 후 문자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고객님 주변에 빈 차량이 없습니다. 다음에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A씨는 결국 30분간 추운 거리에서 헤맨 끝에 겨우 남성기사가 모는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했다. A씨는 "밤에 여성기사가 모는 택시 잡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인데, 대체 언제 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여성전용택시가 나오는 거냐"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와 서울시가 최근 수 년 동안 여성들의 심야 안전 귀가를 위한 택시서비스를 해마다 내놓고 있지만, 여성들의 귀가 불편은 줄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근무 여건으로 여성기사 자체가 극히 부족한 탓이지만, 이에 대한 제도 개선노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기사 택시는 2007년 12월부터 서울시 브랜드 콜택시들이 시행하고 있는 서비스인데,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택시기사 9만여명 중 여성은 800여명으로 0.88%에 불과하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택시기사가 남자도 오래 버티기 힘든 고된 직업 중 하나여서 여성기사가 적을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있는 여성기사도 범죄 우려 때문에 대부분 주간에만 일한다"고 말했다.
18년째 택시운전을 하는 여성기사 박모(61)씨는 "남성기사들도 밤엔 남자손님 2명만 타도 불안하다고 하는데 여성들이야 오죽하겠나"며 "콜택시가 여성만 태울 수 있게 보장된 것도 아니어서 밤에 일하려는 여성기사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여성기사가 운전하고 여성만 태우는 '핑크택시(여성전용택시)' 도입을 위해 관련 법까지 개정했지만, 정작 여성기사 충원 계획은 빠져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여성 전용택시나 외국인 전용 택시 등 다양한 택시가맹사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는 내용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국토해양부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 핑크택시 등 수준 높은 택시 서비스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홍보했다. 특히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생활공감정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핑크택시' 아이디어를 대통령상으로 선정하며 현실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핑크택시'는 현재 러시아, 영국, 이란, 멕시코 등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여성기사가 운전하는 것 외에도 위치추적장치(GPS)가 설치돼 택시위치를 실시간으로 회사에 전송하며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상황실로 바로 연락할 수 있는 비상버튼 등이 장착돼 여성들의 안전 귀가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기사가 거의 없는 실정을 감안하면 정부의 기대와 달리 '핑크택시' 사업체가 조만간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부는 그러나 '핑크택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법적 근거만 만들어 놓고 뒷짐을 지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핑크택시는 철저히 민간 수익사업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초기 정부지원은 일절 없다"고 밝혔다. 콜택시업체 관계자는 "여성만 태우는 택시는 아무래도 남녀 모두를 태우는 택시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고 여성기사 자체도 적어 초기 정착까지 자금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며 "정부 지원이 없다면 누가 핑크택시 사업을 하려고 하겠냐"고 말했다.
문준모기자
강아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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