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곤경에 처했다!'의 주인공 선우는 한심하다 못해 짜증이 나는 인물이다. 서른이 코 앞인 그는 무명 시인이고 백수다. 시도 삶도 시들해 만사에 어정쩡하고, 술 먹고 객기나 부리고, 감정은 오락가락하니, 연애라고 잘 될 리 없다. 참다 못해 이별을 선언한 여자 친구에게 매달리면서도 딴 여자가 유혹의 손길을 내밀자 넘어가버리고 만다.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소상민(32ㆍ사진) 감독은 이 영화를 "나이에 비해 미숙한 한 남자의 감정의 복마전 같은 연애담"이라고 소개하면서"감정의 밑바닥, 저열함을 극대화한 인물이 선우"라고 말했다. "지구는 너희 같은 직장인만 지키는 게 아니야"라고 시비를 거는 선우의 모습은 20대 청년 백수가 널린 88만원 세대의 우울한 초상과 일부 겹치기도 한다. 감독은 "선우는 1980년대의 이상주의와 요즘 88만원 세대의 무력감 사이에 '끼인' 세대"라고 설명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선우이지만, 감독의 눈길은 차갑지 않다.
"선우의 캐릭터는 제 또래인 90년대 중반 학번을 염두에 둔 거예요. 학생운동 끝물이었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하면 곱게 보이지 않던 때죠. 시를 쓴다? 그건 취직에만 온 정신이 팔린 88만원 세대라면 하기 힘든 일이잖아요. 선우가 구질구질하긴 해요. 저 같아도 옆에 있으면 콱 깨물어버리고 싶다니까요. 하지만, 선우가 유혹에 쉽게 굴복하는 것은 인간적이어서가 아닐까요."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그는 3수 끝에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연출을 공부했다. 첫 장편인 이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자, 아들이 뭐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던 부모님이 한 시름 놓았다고 한다.
다음 작품을 묻자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90년대 초나 80년대 후반을 다시 돌아보고 싶다고 했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그때는 요즘처럼 돈이 전부는 아니었죠. 그 시기를 지금과 비교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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