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이미지의 '봉동리 이장' 최강희(50) 전북 현대 감독. 하지만 겉 모습과는 다른 확고한 '승부사론'이 전북을 15년 만에 프로축구 K리그 정상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이기면 1시간 기뻐하고 지면 1분 만에 잊어라'는 최 감독의 승부사 기질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15년 만에 우승했으니 보름 동안은 기뻐하겠다"며 우승의 기쁨을 드러낸 최 감독은 아직까지 하늘에 붕 떠 있는 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7일 최 감독을 만나 '신뢰'의 축구철학과 우승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인생철학=축구철학
'리그 우승을 이끈 축구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최 감독은 "축구철학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인생에서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서로간 믿음과 신뢰 두 가지가 없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코칭스태프와 선수간 신뢰가 없었으면 우승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간 신뢰를 싹 틔우기 위해 최 감독은 '대화'를 적극 활용했다. '한 물 갔다'고 평가 받았던 최태욱 이동국 김상식은 전북으로 이적 후 최감독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우승주역'으로 거듭났다.
최 감독은 "신뢰가 생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일단 관계가 형성되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가 해야 하는 철칙이 잡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북 이적 후 부활한 최태욱의 경우 이미 관계가 확립됐기 때문에 올해는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최 감독은 덧붙였다.
▲우승트로피와 맞바꾼 성격 변화
2005년 전북 사령탑에 오른 최 감독은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축구국가대표팀에서 2년간 코치 생활을 했던 최 감독은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온화한 성격으로 변했다. 그는 "이전에는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에서 계획을 실천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전북에서는 있는 자원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환경이었다"며 "이렇게 되다 보니 자연히 성격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올해도 5%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주어진 자원으로 만들다 보니 되더라"고 환하게 웃었다.
성격 변화는 용병 길들이기에도 도움이 됐다. 용병 '삼총사' 루이스, 에닝요, 브라질리아를 팀의 일원으로 잘 다독였기 때문에 전북은 '별'을 딸 수 있었다. 그는 "루이스와 브라질리아가 다른 팀에서 적응하지 못해 부진했지만 분명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다듬으면 충분히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통역을 앉혀 놓고 끊임없이 자신감을 넣어주니 결국에는 일을 내더라"며 '재활공장장'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는 "까다로운 에닝요와 만만디의 루이스는 성격이 극과 극이라 경기 마다 충돌했다. 팀플레이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면 다시는 '경기에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니 둘이 조금씩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며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개인 홈피 일촌만 200여명, '젊음' 공유가 스트레스 해소법
한 팀을 이끄는 감독 자리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최 감독은 색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정신적 고통 부담을 덜어냈다. 그는 "지난해까지 싸이클럽을 통해 젊은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개인 홈피 일촌만 200명"이라고 공개했다. 그는 "잉글랜드와 포르투갈로 건너간 전북팬과도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눴다. 댓글을 달고 답문도 하다 보니 새벽 2, 3시가 돼야 잠을 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올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싸이클럽에서 탈퇴했다. 그는 "젊은 친구들뿐 아니라 전북의 팬클럽 대부분이 일촌 신청을 해 관리가 힘들어졌다. 갑자기 탈퇴해서 팬들이 섭섭할 수 있겠지만 우승으로 보답했다고 생각한다"며 활짝 웃었다. 또 최 감독은 컴퓨터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그는 "만약 사춘기 때 컴퓨터 게임이 있었으면 아마 PC방을 전전하면서 살았을 것"이라며 게임광을 자처했다.
소박한 생활을 즐기는 그는 '독이 든 성배'라 불리는 대표팀 지휘봉에 대해서는 욕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1%도 대표팀을 맡고 싶은 욕심이 없다. 그냥 프로팀에서 선수들과 복닥거리며 사는 게 체질"이라며 "지금처럼 매년 팀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걱정하면서 살고 싶다"고 앞으로의 '소소한 소망'을 밝혔다.
전주=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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