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이 얼얼해지는 차가운 밤, 간이 역사(驛舍) 마당에서 바스락 타오르는 낙엽 냄새는 그윽했다.
화로 곁에 모인 사람들은 옛 기억을 떠올리듯 누군가는 눈을 지그시 감았고 누군가는 고구마를 구우며 도란거렸다. 역(驛)에 얽힌 70년 추억이 낙엽과 함께 타는 간이역의 겨울밤이었다.
"사라져가는 옛 것이 그리워/ 이 자리에 모였다 (…) 정지된 풍경 속에/ 옛 삭풍의 차창을 달고/ 어디 멀리 떠나가느냐/ 애환과 아쉬움이 뒤섞여 있는/ 보라빛 플랫폼 (…) 막차는 오지 않아도 되겠다. …" 기타 음율에 맞춰 이나무 시인의 자작시 '화랑대역에서' 낭송이 이어졌다.
5일 밤 서울 노원구 공릉동 화랑대역. 꼬마 손을 잡고 나온 지역 주민을 비롯해 노원문인협회 회원, 철도동호회 회원 등 50여명이 모여 시 낭송과 낙엽 태우기 등 조촐한 문화행사를 가졌다.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열차를 타고 경기 남양주시로 넘어가기 직전 거치는 이 역은 서울에 마지막 남은 간이역이다.
1939년 문을 연 뒤 70년 동안 기차의 경적이 그치지 않았던 이곳이 내년 경춘선 폐선으로 문을 닫을 예정이어서, 서로의 추억과 아쉬운 마음을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인근 중계동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동익(68)씨에게도 이곳은 아련한 추억의 장소다. "역이 생긴 1939년은 어머니가 시집오신 해였죠. 어머니가 시집온 뒤 사흘 만에 처음으로 남양주 진건면 신원리의 친정에 가는 길에 이 역에서 기차를 처음 타보셨다는 얘기를 돌아가실 때까지 하셨어요."
김씨는 역 대합실 벽에 걸린 오래된 운행표를 한참 바라봤다. 화랑대역은 건립 당시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2006년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됐다. 본래는 '태릉역'으로 불렸으나 1958년 역 인근에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서면서 '화랑대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동익씨는 "여기서 오전 7시30분 기차를 타고 성동역에서 내려 청량리중학교로 통학했는데, 돈이 없을 때는 몰래 타기도 하고 기차가 서기도 전에 장난 삼아 뛰어내리기도 했다"며 추억에 잠겼다.
옆에서 화로에 고구마를 굽던 주민 박덕규(60)씨도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아이 업고 탔다가 아이가 설사를 하는 바람에 옷이 누렇게 변하는 일도 많았는데, 그 때는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며 웃었다.
화랑대역은 이제 경춘선 무궁화호가 하루 일곱 번밖에 서지 않고 하루 이용승객도 2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 역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했지만, 오히려 인적 드문 그 한적함이 사람들을 새롭게 불러들였다.
가족과 함께 화랑대역을 자주 찾는다는 이정옥(50ㆍ주부)씨는 "가을에 아이들이 역사 주변에 쌓인 낙엽을 밟는 것을 너무 좋아해 자주 들렀다"며 "겨울에 역 지붕에 눈이 쌓일 때면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외롭게 뻗은 철로, 빈 플랫폼의 나무 의자, 인적 없는 대합실 풍경은 팍팍한 현실 바깥에 놓인 삶의 여백이다.
역 주변 경춘선 선로를 따라 나 있는 3㎞ 길이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과도 어울려 데이트코스로도 입소문을 탔다. 철도동호회 회원인 허동근(25)씨는 "연인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몇 시간이고 놀다 돌아간다"며 "나도 올 7월에 사진을 찍으러 처음 왔는데 이곳 풍광에 반해 자주 오게 됐다"고 말했다.
박대열(19)씨는 "친구들과 강촌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뭔가에 끌리듯이 이곳에 내렸다"며 "복잡한 도심 속에 홀로 떠있는 섬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60~70대에겐 고단한 삶의 현장이었던 화랑대역이 어느 결에 낭만이 깃든 '삶의 쉼터'가 된 것이다. 70여㎡의 대합실 한 켠에 놓인 검은색 피아노 한 대도 그에 걸맞은 소품이다.
권재희 역장은 "간이역이니까 오르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주변에 사는 화가 한 분이 기증해주셨다"며 "밤에 연인들이 찾아와 남자가 여자친구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화랑대역이 마지막 남은 역의 기능마저 잃게 된다는 소식에 못내 아쉬워했다. 화랑대역은 내년 12월 경춘선 복선 철로가 완공되면,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된다.
대신 문화재로 지정돼있는 역사 주변에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주부 최순희(64)씨는 "아파트 베란다로 화랑대역의 지붕이 보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설렘을 느낀다"며 "그럴 땐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강촌에 가곤 했는데, 기차가 다니지 않으면 매우 허전할 것 같다"며 쓸쓸한 눈빛으로 빈 플랫폼을 쳐다봤다.
6개월 전부터 이 역에 근무하는 역무원 유재곤(58)씨는 "70년대 초반 강촌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자주 지나다닌 이곳이 내 인생의 마지막 역이 될지 몰랐다"며 "내년에 은퇴하는데 화랑대역과 같은 운명을 맞는 셈"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김현우 기자
사진=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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