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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성공 스토리]〈1〉우리농원 우호희-박병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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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성공 스토리]〈1〉우리농원 우호희-박병순 부부

입력
2009.12.0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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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농촌에 유독 힘든 한 해였다.

극심한 경제난에 전례 없는 쌀값하락까지 겹치면서, 농사에 대한 근원적 회의감까지 번지게 됐다. 한국사회의 기반인 농촌, 그리고 한국경제의 생명산업인 농업은 이제 좌절과 도약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에 한국일보는 전국8도 8명 농업인의 성공스토리를 통해 농촌실태를 점검하고 농업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해가 뜨려면 아직도 두 세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이른 새벽. '양주골 딸기'의 본산인 경기 양주시 삼숭동 들녘의 하루는 비닐하우스 전등들이 어둠을 밀어내면서 시작된다.

이 곳 '우리농원'의 우호희(66) 박병순(64)씨 부부가 운영하는 3,300㎡ 규모의 비닐하우스 단지.

한여름 '아주심기'(정식ㆍ定植=어느 정도 발육시킨 종자를 정한 밭에 심는 것)한 딸기 모종들이 얼마 전 흰 꽃을 피워낸 데 이어 지금은 새빨간 딸기를 밤새 키워내고 있다. 농한기로 불리는 한겨울이지만, 우씨 부부에게 지금은 농번기나 다름없다.

딸기의 재발견

일반적으로 딸기는 기온이 낮은 충청 이북지역에선 재배가 안 된다는 것이 통설. 하지만 우씨 부부는 한강 이북에 딸기를 뿌리 내리게 한 인물이다.

시작은 1970년대 우씨 부부의 경상도 여행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랑진에서 딸기를 맛있게 먹었는데, 나중에 서울에 와서 '삼랑진 딸기'를 사먹으니까 그 맛이 전혀 안나더라구."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삼랑진 딸기를 서울에서 팔려면 전날 하루 전날 화물차에 실어야 하기 때문에, 시차를 고려해 상대적으로 덜 익은 딱딱한 상태의 딸기를 보냈던 것.

우씨는 이 점에 착안했다. "양주에서 한번 해보자. 완전히 익은 놈을 이른 새벽에 따다 그날 시장에 내 놓으면 분명히 잘 팔릴 것이다."

우씨 부부는 먼저 빚을 내 40m짜리 비닐 하우스 한 동을 지었다. 비닐하우스는 당시만해도 낯선 구조물이라, 이웃 사람들은 우씨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더울 때 벼농사 짓고 서늘해지면 밤 따다 팔면 됐지 추울 때 농사는 무슨 농사여. 더구나 이 추운 곳에서 딸기? 살다 보니 참 별 일이구먼." 지금이야 딸기로 유명한 양주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양주는 쌀과 밤이 재배작물의 전부였다.

하지만 우씨 부부는 지하수를 끌어다 실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방법 등으로 마침내 1976년4월 딸기를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시도한 지 3년 만으로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양주 벌판에서였다. "주변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미친놈'에서 해제된 날을 어찌 잊겠어. 며칠을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랑 잠을 잤지."

집념

오이 호박 고추 대파 양파 감자 고구마 등이 가득 채우고 있던 양주 들판은 우씨 부부의 성공 이후 은빛 비닐하우스로 점점 바뀌어갔다.

딸기는 단위면적당 생산액이 기존 작물보다 두 세배는 높았기 때문이다. 우씨는 "놀림에 상처받고 포기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욕하던 사람들이 뒤에는 우리 농법을 배우기 줄을 섰다"고 회고했다.

1년에 기껏해야 한번 시도해 볼 수 있는 농사일의 경우, 끈기와 인내 없이는 열매를 맺기 힘들 다는 것이다.

사실 딸기 비닐하우스도 부지런한 그의 천성이 빚는 산물이다. "농촌과 서울의 소득 격차가 왜 생깁니까. 결국은 도시 사람들은 사계절 일을 하는데 농촌 사람들은 여름철에 반짝 일을 하다가 겨울엔 다 놀기 때문 아닙니까. 농촌도 일년 열두달 일해야 해요. 딸기 비닐하우스도 결국은 겨울에도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다가 시작된 일이지요."

아무리 하늘 바라보고 짓는 농사라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결코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 우씨의 생각이다. 농업에서도 도전과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씨는 요즘 농촌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무엇보다 모두들 농사짓기 싫어한 결과, 이젠 농사 일손마저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되고 있는 게 요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간헐적으로 도시를 떠나 오는 귀농인들도 있지만, '안되면 농사나 짓지'하는 생각으로 농촌에 왔다가는 백전백패일 수 밖에 없다.

우씨는 "최근 귀농들이 늘어 반갑긴 하지만 농촌에서 자리잡으려면 도시에서 살 때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면서 "일부는 마치 주식 투자하듯 농사로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제 한 몸과 가족의 먹거리가 아닌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숭고한 노동이라고 생각할 때만이 수익과 보람을 다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지원

농업인들의 발상전환과 도전정신도 중요하지만, 농촌과 농민에 대한 정부지원은 좀 더 확대되고 과감해져야 한다는 게 우씨의 생각이다.

쇠고기에 이젠 쌀까지 확대만 되어가는 농업개방, 여기에 갈수록 늘어나는 쌀 재고, 늙어가는 농촌인력과 줄어드는 농촌소득, 이런 것들은 농업인 스스로 풀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씨는 "요즘처럼 쌀이 과잉 생산되고, 값이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농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양주=글ㆍ사진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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