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정의 득과 실은
노사정 합의의 내용은 복수노조 허용을 2년6개월 유예하고 전임자 임금은 전면 금지하되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주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노사정은 이를 둘러싸고 피말리는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서로간에 무엇을 주고 받은 것일까.
정부, 원칙 대신 명분 살려
정부는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복수노조 허용시기가 2년6개월 늦춰지면서 원칙은 깨졌다. 하지만 현 정부 임기 내에 복수노조를 도입할 수 있게 돼 명분은 지켰다.
특히 복수노조의 핵심인 교섭창구 단일화를 관철시켜 사실상 복수노조 문제는 정부의 뜻대로 결과가 나왔다는 후한 평가도 가능하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노조법 부칙에 규정된 '장관의 권한'을 거론하며 법이 아닌 행정법규로도 창구를 단일화할 수 있다며 무리수를 뒀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타임오프는 지난 7월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대안으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한노총, 두 마리 토끼 좇다 허둥지둥
한국노총은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삭제를 주장했지만 두 가지 다 놓쳤다. 차선책은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를 최대한 유예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장 6개월 후 시행이라 발등의 불이 될 처지에 놓였다.
전임자 임금문제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지난달 30일 민주노총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감수하면서까지 복수노조 반대로 돌아섰지만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됐다.
노동계가 독소조항으로 꼽아 온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주를 처벌하겠다'는 조항을 그대로 방치한 것도 당초 입장에서 크게 밀린 것이다.
그렇다고 복수노조 유예기간이 대폭 늘어난 것도 아니다. 당초 재계와 합의한 3년 유예에서 2년6개월로 오히려 단축됐다.
특히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해 노사자율을 끝까지 주장하다가 시행령을 통해 법적으로 강제토록 한 것은 패착으로 꼽힌다.
한국노총 내부에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협상결과인지 모르겠다"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총, 어부지리로 실리 챙겨
경총은 협상 초기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초점은 복수노조였다. 하지만 복수노조를 2년6개월이라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유예시키면서 원래 의도를 달성했다.
교섭창구 단일화도 경총이 목소리를 높이던 부분이었다. 현대ㆍ기아차의 경총 탈퇴 등 내부 반발이 있었지만 이만하면 괜찮다는 평가가 주류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6개월 후 시행하는 전리품으로 챙겼다. 경총은 타임오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사업장 규모별로 타임오프를 적용하는 것은 상한선을 두자는 의미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만하다.
타임오프는 협상 초기 모호성으로 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노총과 노동부가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대안으로 부각됐고 경총이 그 덕을 톡톡히 봤다.
남은 과제는
타임오프는 모호한 대안이다. 그 때문에 7월 노사정위가 이를 제안했을 때 노사 모두 거부했다. 노조활동의 범위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도 원칙에만 합의하는데 그쳐 향후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한나라당이 합의안을 바탕으로 법안을 발의하더라도 민주당 등 야권이 민주노총의 배제를 이유로 합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여야 격돌이 불가피하다.
최악의 경우 노사정은 합의했지만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내년 초 상당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복수노조를 총선 직후인 2012년 7월부터 도입한다는 부분에 대해 정략적인 의도가 짙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 여당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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