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볼 일이다. TV 드라마 <선덕여왕> 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주말에 사람들이 경주에 몰려들어서가 아니다. 태종 무열왕이 다시 살아나와 신라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어서도 아니다. 1970년대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은 이상한 보문단지의 구조물과 신라 왕경(王京)이 어떠했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리 저리 방치된 유적들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
세계에 드문 역사의 현장
우리 국민들 가운데는 60~70년대에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가본 이들이 적지 않아 드라마를 보며 추억을 되새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수학여행은 둘째치고 경주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른다. 경주라고 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고, 그냥 남산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왜 관심거리인가 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오늘날 배낭여행으로 쉽게 가 볼 수 있는 이탈리아의 로마, 터키의 이스탄불, 스페인의 톨레도, 중국의 시안(西安), 일본의 교토(京都) 등에 대해서는 여행안내서를 보든 직접 탐방을 해보든 잘 알고 있다. 유적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역사와 사건들 하나하나까지 세세히 알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 역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우리나라에는 그같은 찬란한 역사가 없다고 생각한다. TV사극에서 보듯이, 온통 궁궐 안에서 음모와 술수가 판을 치고 당쟁으로 서로 죽이고 헐뜯고 하는 것과 임진왜란이나 정묘호란처럼 강대국의 침략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 우리의 역사로 알고 있다.
경주. 신라 천년의 고도이면서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누적된 역사도시다. 기원전 57년부터 AD 935년까지 하나의 도시에 천년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발전한 곳, 거기에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쌓여 있는 곳이 경주다. 이런 고도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드물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포함한 수많은 사찰과 탑과 불상이 전역에 널려 있는 남산지역, 반월성에서 신라 궁궐에 이르는 주작대로가 있고, 그 주위에 귀족들과 인가들이 배치되어 동쪽 끝 제국의 도시로 번성했던 도성지역, 왕족들과 귀족들이 묻혀 있는 고분들이 즐비하게 산재한 네크로폴리스, 신라 불교의 최전성기를 보여주는 황룡사와 분황사 지역, 그리고 천년 도시를 지켜낸 산성들이 산재하는 지역들. 이러한 영화는 현재 땅속에 묻혀 있거나 주춧돌로만 남아 있다.
경주는 이런 유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았던 인물들이 엮어낸 장대한 역사 드라마의 현장이다. 산천 유곡을 누비며 나라를 걱정하고 유불선과 우리 고유사상으로 심신을 수련한 풍월도(風月徒)인 화랑들과 원화들, 불교철학의 정수를 이룬 의상, 원효, 혜공, 자장과 같은 대사상가들, 당나라에 가서 문재를 날리던 최치원, 김가기, 최승우 등이 있고, 그 속에서 피어난 학문과 예술은 가히 고대제국의 정화를 보여준다.
특히 경주는 한반도의 동쪽 끝에 있었지만, 고대 문명교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실크로드를 통하여 로마시대의 유물이 전해지고 서역의 문물이 들어왔으며 불교가 전파되었다. 괘릉의 서역인 무인석이나 처용가의 처용 등에서 보이듯이, 외국인들이 신라에 들어와 벼슬을 하고 활동을 하기도 했다. 동서교류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이런 세계적 고도와 그 문명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은 경주 발굴과 복원을 국가프로젝트로 하는 일이다. 경주지역을 역사특구로 지정하고, 신경주를 조성하고 구경주를 대대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주시장도 전문가가 맡는 것이 필요하다.
위대한 조상ㆍ훌륭한 문명
경주가 세계적인 역사도시로 다시 태어나 세계 유명 크루즈가 일본의 교토-남해안의 한려수도-경주ㆍ가야-금강산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훌륭한 조상이 이룩한 문명을 빛내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다. 어리석은 후손들에 의해 위대한 조상들이 욕먹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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