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의례히 늘어나던 것이 와인 행사였다. 특히 보졸레누보라 불리는 프랑스산 햇와인이 출시되는 11월의 셋째 목요일로부터 연말까지는 각종 시음회와 햇와인 출시 행사, 송년회 형식으로 연출되는 와인 동호회 모임의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 왔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지난 몇 년 간 인기 열풍에 휩싸였던 와인을 막걸리가 누른 형국이다. 늦은 저녁 나를 오라 부르는 지인들 중 열에 아홉은 막걸리바에 있다고 말한다.
대형 마트에 가면 막걸리누보라는 낯선 이름의 햅쌀 막걸리가 인기다. 제대로 만든 막걸리는 소화에 좋고, 미용에 좋으며, 결정적으로 우리 농산물로 만든 것이니 내 마시는 술 한 잔이 나라의 경제에도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까지 더해져 그 맛이 더 난다.
그러나 우리는 잠깐,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열풍처럼 번져 나가고 있는 막걸리의 인기가 진정 막걸리 장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어르신들의 술이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막걸리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대학가의 허름한 주점 혹은 피맛골에나 가야지 빈대떡 한 점에 막걸리 한 사발을 먹을 수 있었다.
연재하던 칼럼의 취재 때문에 찾았던 몇몇 술도가 어르신들은 몇 년 전만 해도 "막걸리가 인기도 별로 없고, 그러다 보니 술 담그는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며 "언제까지 술도가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하셨다.
하지만 올해는 연말 맞은 서울 어디에나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라면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즐비하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대접도 못 받던 술인 막걸리를 그간 묵묵히 만들어 오신 분들이 분명 흐뭇해 하실 만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한발쯤 더 나아가 다양한 지방의 다양한 막걸리를 더 맛볼 차례다. 대형 마트에서 행사를 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소규모 술도가들은 막걸리를 아끼는 소비자들이 나서서 지켜 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막걸리 열풍이 도심 한 가운데서만 불다가 끝나지 않게, 나의 살던 고향에는 아직 남아 있는 양조장이 없는지부터 한번 알아볼 일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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