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거품)이 '시장실패'의 결과인지, '정부실패'의 대가인지, 혹은 '인간실패' 탓인지, 콕 짚어서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만약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버블 같은 것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터. 그렇지 않은 현실은 분명 시장경제에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의 한계를 대신해줘야 할 '보이는 손'조차 속수무책인 것을 보면, 버블은 감독ㆍ규제당국의 허술한 틈새를 비집고 더 부풀려진다 하겠다. 한편으론 시장과 정부를 뛰어넘는 보다 태생적이고 근원적인 힘, 그러니까 인간 자체에 내재된 광기ㆍ탐욕의 DNA가 결국 버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장 정부 인간 중에서 누구의 실패가 더 크든, 분명한 것은 경제는 언제나 버블과 함께 해왔다는 사실이다. 버블의 역사는 경제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경제는 곧 '버블과 붕괴(boom & burst)'의 연속이었다.
지금 세계는 '두바이 버블' 쇼크에 빠져 있지만, 그런 거품은 수백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예컨대 ▦희귀 튤립에 대한 상류층들의 호기심 섞인 선호가 국민적 투기로 번졌던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요즘식 표현으로 '기업가치'에 대한 정확한 분석없이 맹목적인 투자로 거액 손실을 초래했던 영국무역회사 '사우스씨(South Sea) 버블'과 프랑스 금융회사 '미시시피 버블.' 경제학자들은 이 튤립과 사우스씨, 미시시피의 케이스를 역사상 '3대 버블'로 기술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도 경제는 버블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도 최근 10년새 IT에서, 신용카드에서, 또 부동산에서 세 번이나 대형 버블을 경험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버블엔 늘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유동성. 버블은 결코 결핍에선 오지 않는다. 투자대상을 쫓는 풍부한 유동성이야말로 언제나 거품을 일으키는 1차 원료다.
둘째는 환각 또는 최면. 투자자들은 언젠가는 터질 거품인줄 알면서도 달려든다. 그저 '폭탄 돌리기의 술래가 나는 아닐 것'이라고 자기최면을 걸 뿐. 오죽하면 사우스씨 버블로 거액 손실을 본 물리학자 아이작 뉴튼조차 "별들의 움직임만 계산할 줄 알았지 사람의 광기는 짐작하지 못했다"고 말했을까.
셋째는 붕괴속도다. 버블은 시차를 두고 부풀어 오르지만, 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대응이 힘든 것도 이 때문일 게다. 두바이도 마찬가지였다.
혹자는 버블도 경제현상이 만큼 순기능은 있다고 말한다.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는 버블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일확천금을 좇아 금광으로 몰려갔지만 사기꾼과 술집 말고 정작 금으로 돈 번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버블 덕에 도로가 생기고 도시가 생기고 결국 미국서부가 탄생한 것이다"
두바이도 그렇다. '사막의 기적'에서 '모래 위 누각'으로 전락했지만, 그렇다고 웅장한 마천루와 그것을 탄생시킨 상상력까지 폐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버블을 막았더라면 최선이었겠지만, 그래도 두바이 도시 자체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한때 '두바이 신드롬'에 푹 빠져있던 우리정부나 기업들도 이번 버블붕괴로 두바이의 모든 것을 외면하는 특유의 '냄비근성'을 또다시 발휘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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