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오랜만에 손 한 번 잡아 보입시더." "형님도 이리로 오이소."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 북구 태전동 복음실버타운의 가나안빌리지 2층. 빨간 '원숭이 엉덩이'가 달린 익살맞은 반바지 차림에 큼지막한 노랑 리본을 머리에 얹은 50대 남성이 들어서자, 거실이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나이차가 30년을 넘는 80대 할아버지, 90대 할머니도 호칭은 모두 '형님' '누님'이다. 함께 온 젊은 남녀들도 하나같이 반짝이 스카프에 조끼 등 우스꽝스러운 차림이다. "오늘은 손녀딸들이 많이 왔어요. 자 박수∼." 어르신들은 벙긋벙긋 웃고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조용하던 노인요양시설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들은 대구보건대 사회복지과 배기효(55) 교수와 학생 16명. 이들의 재롱잔치에 어르신들은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어르신 손을 잡고 자전거돌리기 놀이를 하는 학생들 얼굴에서도 처음의 서먹해하던 표정이 사라졌다.
"하루 종일 있어도 늙은이들이 뭐 웃을 일이 있어야지. 그런데 '누님'이라며 재롱을 피워주니 얼마나 좋아. 헤어지기가 너무 싫어." 매주 이곳으로 '웃음봉사'를 하러 오는 배 교수와 학생들이 다음주를 기약하고 떠나려 하자, 이채봉(84) 할머니는 잡은 두 손을 더 꼭 쥐며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사회복지과 뿐이 아니다. 대구보건대가 20년 가까이 학과별로 봉사의 전통을 대물림하고 있다. 학교 차원에서 2년제는 16시간, 3년제는 24시간, 사회복지과는 96시간 이상 봉사를 해야 졸업할 수 있는 '봉사학점 패스제'를 두고 있지만, 등 떠밀려 하는 봉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방사선과의 '천사들의 합창'과 건강다이어트과의 '다이어트 웰니스(Diet Wellness)', 언어재활과 '한마음', 뷰티코디네이션과 '헤어동아리' 간호과 '여우사이' 등 학과별 봉사동아리만 18개에 이르고, 재학생 7,200여명 중 900여명이 정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전문대학의 특성을 살려 학업 내용과 봉사를 접목한 것이 이들 동아리의 강점이다. 재롱잔치 같은 통상적인 봉사 외에도 '천사들의 합창'은 골밀도, '다이어트 웰니스'는 비만 관리와 체형별 운동처방, '한마음'은 언어치료, '헤어동아리'는 두피건강 측정 등을 해주는 식이다.
물리치료과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11년째 치료 봉사를 해오고 있다. 그런데 회원이 됐다고 바로 봉사를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입 회원은 선배들에게서 해부학과 운동, 전기치료 등을 배우고 현장실습을 거친 후에야 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 11년간 237명의 회원이 쌓아온 봉사 시간이 무려 1만4,000여 시간에 달한다.
최근 제21회 아산상 청년봉사상을 받는 기쁨도 누렸다. 동아리 회장 백석환(21ㆍ2년)씨는 "우리가 학교 내 여러 봉사동아리를 대신해 상을 받은 것 같아 어깨가 무겁다"며 "상금 1,000만원은 좀더 체계를 잡아 봉사의 질을 높이는 데 쓸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학은 여름방학 농촌봉사활동도 좀 별나다. '이동 종합병원'이 꾸려지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학생 180명과 교직원 등이 경남 밀양시 태룡초등학교 강당에서 농활을 할 때도 일반의원과 한의원, 치과까지 모두 40종의 무료진료를 펼쳤다.
초음파, 골밀도, 시력측정 등을 위해 의료차량 2대가 출동해 평소 건강검진을 엄두 내기 어려웠던 주민 500여명에게 각종 검사와 치료를 해줬다.
매년 가을 열리는 축제의 테마도 봉사다. 1999년부터 대학 캠퍼스와 대구 도심 2ㆍ28중앙공원, 반월당 적십자병원 등에서 펼치는 헌혈축제에는 지금까지 8,000여명이 팔을 걷고 참여했다. 틈만 나면 헌혈을 외치는 이 대학을 '드라큐라 대학'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대구보건대는 12년째 '인당 봉사상'도 운영하고 있다. 고교생들이 많이 뽑히는데, 수상자가 이 대학에 지원하면 여러 특전을 준다. 사회복지과 2학년 정호선(20ㆍ여)씨도 인당봉사상 수상자다. 중3때부터 고3까지 1,800여시간을 봉사했고, 대학에 와서도 주말마다 충북 음성꽃동네를 찾고 있다.
교직원들도 빠질 수 없다. 2005년 교직원 축구동아리로 시작한 '보건FC'는 매달 첫째 토요일 경북 칠곡군의 성가양로원을 방문, 목욕봉사와 청소 등을 하고 있다. 교직원 평정표의 봉사점수 2점은 크게 변별력 없는 다른 항목과 달리 인사를 좌우할 정도라고 한다.
'웃음봉사'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배기효 교수는 "대학 캠퍼스는 각자 배움의 특성에 맞는 봉사 내용과 기법을 개발해 대물림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며 "봉사 대상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람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대구=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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