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년 겨울이면 이삼 일 정도 따뜻한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레르기로 고생을 해왔는데, 피부가 건조해지는 겨울이면 증세가 더 심해져서 생긴 습관이다. 물론 7~8년 전부터 나이 덕분인지 증세는 완전히 없어졌지만 겨울여행의 습관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올해도 여행을 다녀왔다. 대개 여행을 떠나는 경우 항상 2~3권의 책을 준비해 가서 읽곤 하는데 이번엔 여행지에 거주하는 후배의 책을 빌려 보게 되었다. 지금도 베스트셀러인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이틀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숨 쉬듯 가볍게 읽은 책이었지만 마음 속 깊이 공감했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 좋은 책이었다. 술>
작가인 아잔 브라흐마는 캠브리지대에서 이론물리학까지 전공했으나 졸업 후 스스로 태국으로 건너가 삭발하고 수도승이 되었다. 당대의 위대한 스승인 아잔 차의 제자 중 가장 지혜로운 수도승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현재 자신이 직접 벽돌 쌓는 일과 용접을 배워가면서 호주 남반구에 건립한 절의 주지이기도 하다.
매주 금요일 저녁 절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되는 그의 법문 동영상은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 명이 접속해 들을 만큼 인기가 높다.
이 책은 그가 지난 30년 동안 수행하면서 겪은 경험, 스승 아잔 차와 함께 보낸 일화, 고대 경전에 실린 이야기, 그리고 절에서 행한 법문 등을 모아 108가지 이야기로 엮은 책으로, 쉬운 언어로 우리의 잃어버린 자유와 삶을 되짚어 보게 한다. 나에게 이런 감동을 준 몇몇 대목을 내 생각과 함께 소개해본다.
잘못된 두 장의 벽돌
스님이 호주에서 직접 벽돌을 쌓으며 절을 지을 때의 일화로, . .
디자이너로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이나 신체의 콤플렉스에 대해 절망감에 빠져드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내가 아는 지인 중 한 명은 자신의 눈을 5번이나 성형했다는 얘기를 해 놀랐던 적이 있다. 그는 거울을 보면 오로지 자신의 콤플렉스인 눈만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콤플렉스인 눈 보다는 얼굴 전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자신의 작은 단점에 집착하기보다 더 많은 장점들을 자각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자신을 사랑해라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은 스스로를 인정하는 길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대부분을 남을 의식하며 산다. 하지만 남과 비교해가며 사는 인생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초라한 삶이 되고 만다.
내가 디자이너로 데뷔했을 때 한동안은 내 재능에 대해 확신하며 자신감에 차있었다. 하지만, 10년 정도 되었을 무렵 벽에 부딪히면서 내 자신의 한계와 싸우다 포기할 생각마저 들었었다. 왜 나는 저 뛰어난 사람들처럼 해내지 못할까?
이렇게 고민 고민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다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내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못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이런 경험 탓에 내가 학생들 앞에 설 때면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고 얘기한다.
이 책에서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이해할 때 더 많은 자신의 장점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머리를 비워라
나는 컬렉션이 끝날 때마다 여행을 떠난다. 내 안에 채워졌던 이전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한 '비움의 휴식'인 셈이다. 디자이너로서 만약 수많은 것들을 버리지 않고 축적하기만 한다면 더 이상 새로운 감동을 창출해낼 수가 없다.
저자의 스승인 아잔 차 스님은 '쓰레기통이 되더라도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 쓰레기통과 같이 되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비심을 가지고 지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들어주되, 자신에게 담아두지 말라는 교훈이 아닐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마라
지난주 쇼를 준비하다 마지막에 생각지 않은 문제가 생겨 고민한 적이 있었다. 도저히 그 상황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스텝들마저 얘기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금껏 나의 신조였다. 하지만 그 땐 포기했다.
그 순간에는 목숨만큼 중요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능력 밖의 일들이라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결국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순간을 즐겨라. 죽음을 앞두고도 진정한 삶의 의미와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세상을 본다
우리는 텔레비전과 신문,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모든 소식을 속속湧?알고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이런 것들이 우리가 봐야 될 것들을 가리는 어마어마한 벽은 아닐까. 신문을 덮고 라디오를 끄고, TV를 꺼봐라. 그리고 우리가 봐야 될 곳, 보지 못한 곳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그래야 우리 삶의 힘든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세상이 어떠하든 남을 탓하기 전 내 스스로 또 다른 나를 인정하고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결국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순간순간 잊고 살았던 일들을 짧은 여행 끝에 책한 권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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