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30일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에 대한 입장을 급선회한 것에는 '경고'와 '호소'의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정부에는 최후통첩성 경고를 보내되 국민을 상대로 몸을 낮추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자회견문 제목을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대국민 선언'으로 정한 것도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 논리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면서 국민에게 노조의 진정성을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날 선언의 핵심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와 사실상의 복수노조 허용 반대이다. 장석춘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임금지급 금지 조항을 무조건 삭제하라"던 것에서 "노조 자구책으로 대안을 마련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스스로 개혁'이라든가 '과거와 다른 노력' 등 좀체 등장하지 않던 완곡한 어법이 사용됐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노사자율'을 강조한 기존 입장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다. 또 '준비기간'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법 시행을 유예하는 효과를 꾀했다. 노동부가 기자회견에 대해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노총의 전략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 직후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장 위원장, 임태희 노동부 장관, 김영배 한국경총 부회장과 만나 "복수노조, 노조전임자 임금문제에 대해 노사가 합의안을 만들어 오면 정부가 수용한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정부가 "노사가 합의해도 원칙에 어긋나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것에 비하면 큰 성과다. 경영계는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하지만 내심 전임자 임금 지급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노사정 합의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
한노총이 이날 절충안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절박감이 컸다. 지난 27일부터 한나라당 당사를 점거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연말 총파업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끝나면서 자연스레 파업수순을 밟게 됐지만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카드를 갖고 있는 한노총 지도부가 조합원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내부 압력이 거셌다.
세종시 등 대형 이슈에 묻혀 노동현안이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깔려있다. 노사정 회의가 결렬되면서 여야가 각기 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노사정 합의가 없는 한 정치권의 입장차가 커서 9일 정기국회 종료 전까지 법안을 통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한노총 관계자는 "수십 만명이 모이는 집회를 열고 여당 당사를 점거해 봐야 언론에 잘 보도되지도 않더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날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한다는 장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민주노총이 연대투쟁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12월 총파업을 앞둔 노동계가 분열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부담이다.
이에 대해 한노총 고위관계자는 "준비기간이 필요한 것은 복수노조도 마찬가지"라며 "장 위원장 발언은 준비없이 복수노조를 시행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미"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광수기자
사진=오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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