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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이 춤춘다" 걸그룹에 빠진 3040/ 삼촌부대, 경제력 등 앞세워 팬클럽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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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이 춤춘다" 걸그룹에 빠진 3040/ 삼촌부대, 경제력 등 앞세워 팬클럽 활동

입력
2009.12.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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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 활동 1,000일 기념 선물로 뭐가 좋을까요?" "이어(ear) 마이크 어때요? 미국에서 제작하면 500만원 한다는데."

"우리 애들 '카니발' 타고 다니는 거 보면 안쓰러워요. '스타크래프트'인가? 큰 차 있잖아요. 그거 한 대 사주면 좋을 텐데."

"중고는 5,000만원이라는데 모금하면 되지 않을까요?"

28일 오후 7시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음식점. 소주에 매콤한 안주를 곁들인 모양새는 여느 술자리와 다를 바 없지만 나누는 대화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들이 말하는 "우리 애들"은 다름 아닌 5인조 걸그룹 '카라'. 30대 남성들이 주축이 된 카라 팬클럽 '마스카라'의 운영진 5명이 ''우리 애들"에게 줄 선물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갓 서른인 대학원생과 마흔이 코 앞인 중견 직장인 등 5명은 밤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선물을 골랐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닉네임 마부카(32ㆍ건설업)씨는 "10년 전 핑클 팬이라는 친구 녀석에게 유치하다고 놀렸는데 지금은 내가 더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과장인 스빛나(37)씨는 "내가 근무하는 전산실 내 모든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카라 사진을 깔아 원성이 높다"며 웃었다.

걸그룹 전성시대를 맞은 가요계에서 30, 40대 아저씨 팬들의 활약이 뜨겁다. 걸그룹 멤버들의 나이와 비교하면 '삼촌' 뻘쯤 되는 이들은 사회 경험과 경제력을 앞세워 기획사 활동을 직접 돕고, 기부와 봉사를 통해 그룹 이미지를 높이는 등 연예계의 또 다른 '힘'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스카라 운영자인 닉네임 카리스마스(37ㆍNGO 활동가)씨는 "30대 전후 팬층이 두터워졌지만 기존 팬클럽이 10대 위주여서 '삼촌 팬'들이 참여하기 어려웠다"며 "우리가 주도하는 팬클럽을 만들어 단순히 보고 즐기는 데서 벗어나 그룹 멤버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 참여도 할 수 있는 차별화한 활동을 하고 싶었다"고 결성 취지를 밝혔다.

21일 경기 안양시 석수동 안양노인전문요양원에서는 9인조 걸그룹 '소녀시대' 팬 15명이 멤버 유리의 생일을 기념해 김치 담그기 봉사를 펼쳤다.

소녀시대의 30, 40대 팬클럽 '시스터스' 운영진 오모(37ㆍ영어강사)씨는 "단지 음반 판매고를 올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룹 이미지가 좋아지게 돕는 것도 팬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소녀시대 이름으로 계속 봉사와 기부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어린 팬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팬클럽 활동에 30, 40대들이 왕성하게 참여하면서 기획사 홍보와 마케팅에서도 이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들은 멤버들의 스케줄이 조금이라도 많아지면 '너무 힘들게 하지 말라'는 불평도 쏟아낸다"고 말했다.

일부 삼촌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 멤버의 생일 등에 신문 광고를 내 대대적인 기념을 하기도 한다. 카라의 니콜, 소녀시대의 써니와 서현, 제시카, 티파니 등이 신문광고를 통해 생일 축하를 받았다.

한 그룹의 팬클럽 회장은 "광고 한 번 내려면 수백에서 수천 만원이 드는데 30, 40대 팬들이 대부분 지원한다"며 "어떤 경우에는 팬 한 명이 광고비를 다 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소녀시대 팬클럽인 '소시밴드' 리더 김준성(47ㆍ컨설팅회사 이사)씨는 직접 소녀시대를 응원하는 영상물을 만들고 있다.

팬들 중 오디션을 거쳐 영상 PD와 오디오 PD, 보컬을 뽑고, 소녀시대 히트곡에 멤버들 이름을 넣어 개사한 노래 등을 담아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됐다. 팬클럽 홈페이지에 띄운 동영상은 주요 포털에 링크돼 조회수 10만건을 넘겼다.

김씨는 "20여년간 직장 일에 매달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는데, 우연히 소녀시대 콘서트를 보다가 고등학교 시절 밴드 활동을 하며 벅차 오르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소시밴드 활동 이후에 삶에 생기를 얻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청소년기부터 팬클럽 문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어른이 돼 지금의 '삼촌팬'을 형성했다"면서 "7080문화에서 보듯 이들은 자신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물론 스타를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즐기는 것을 처음으로 터득한 세대"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삼촌팬'들은 일부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남 모르게 겪은 마음고생을 털어놓기도 했다.

7인조 걸그룹 '애프터 스쿨'의 열혈팬 이모(32ㆍ회사원)씨는 "걸그룹 팬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변태'라고 놀린다"며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자꾸 듣다 보니 팬클럽 활동은커녕 팬이라고 밝히는 것을 나도 모르게 주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멤버들을 볼 때 드는 감정은 동경하는 여성이 아니라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뿌듯함 같은 것"이라며 "사회 인식이 바뀌면 대중문화의 소비자로서 30, 40대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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