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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수문장 '골리'의 세계/ 시속 150km 퍽~ "나는 인간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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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수문장 '골리'의 세계/ 시속 150km 퍽~ "나는 인간방패"

입력
2009.12.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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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 2.54cm, 지름 7.52cm의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아이스하키 퍽은 살인적인 위력을 지닌다. 빙판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날리는 슬랩샷의 속도는 시속 150km를 웃돈다. 퍽에 맞아 실신하는 선수들이 종종 나오는가 하면 지난 2002년에는 국내에서 경기 중 슈팅을 맞은 선수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살인적인 위협에 온몸으로 맞서는 배짱 좋은 사나이들이 있다. 높이 1.22m, 넓이 1.83m의 골문을 지키는 아이스하키 골키퍼들이다. 그들은 단지 스틱과 글러브로 무장한 채 100마일에 육박하는 퍽과 맞선다.

흔히 '골리(Goalie)'로 불리는 아이스하키 수문장이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총 중량이 20kg에 달하는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60분간 쉼 없이 날아드는 퍽을 막아내는 일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중노동이다.

아이스하키에서 선수 교체는 무제한적으로 자유롭게 이뤄진다. 스케이터들은 '라인(Line)'이라는 조합으로 묶여서 수시로 교체하며 경기를 치른다. 득점력이 높은 선수들로 이뤄지는 1라인과 2라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실제 빙판에 서는 시간은 20분이 넘지 않는다. 반면 골리는 부상을 당하거나 극심한 부진을 보이지 않는 한 60분을 풀타임으로 소화한다.

아이스하키 골리에게 '사각 지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골대의 뒤쪽까지 활용되는 아이스하키의 특성상 360도 전방위에서 날아드는 퍽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 축구, 핸드볼 등 다른 종목에 비해 골문이 작지만 아이스하키 골리의 활동량이 훨씬 많은 이유다. 경기를 치른 후에는 여기저기 멍이 들기 일쑤다.

온몸을 보호 장구로 감싸고 있지만 시속 150 km로 날아드는 퍽이 주는 충격은 엄청나다. 보호 장구 사이의 빈 틈에 퍽이 꽂힐 때의 고통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아파도 아픈 척을 할 수 없는 것이 골리의 숙명이다.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부담보다 더욱 큰 것은 정신적인 압박이다. 자신의 활약이 승패와 직결되는 탓에 골리들은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 경기를 치른다. 최근 일본 원정 6연전을 치른 안양 한라는 골리 손호성에게 아내를 원정길에 동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겨 내린 구단의 특별 조치였다. 손호성은 6경기에서 14골을 허용하는 수준급 방어를 선보였다. 아이스하키에서 골리의 중요성, 그리고 골리가 받는 정신적인 부담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손호성은 골리를 '외로운 포지션'이라고 표현했다. 승부에 대한 책임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골을 넣는 선수는 실패할 경우 또 다른 찬스를 노릴 수 있지만 골을 막는 입장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 같은 중요성 탓에 골리는 팀 내에서 가장 존중을 받는다. 승리했을 경우 골리의 헬멧을 두들기며 격려하는 것은 아이스하키의 불문율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경우 선수들이 링크에 입장할 때 골리가 선두에 나서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헬멧은 아이스하키 골리의 상징이다. 상대 공격수들을 '기싸움'에서 제압하기 위해 화려하고 위협적인 도색을 한다. 따라서 헬멧 도색에만 700~8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 골리가 착용한 장비는/ NHL 득점 늘리기위해 규격 갈수록 제한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골리 장비 규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스틱과 글러브, 레그 패드의 크기는 승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레그 패드의 경우 폭이 28cm를 넘을 수 없고, 블로커는 길이 38.1cm, 넓이 20.32cm 이하여야 한다. 글러브는 길이 20.32cm, 폭 10.16cm를 초과할 수 없다.

이 같은 규정은 NHL의 영향으로 도입된 것이다. NHL은 노사 갈등으로 2004~05 시즌이 통째로 취소된 후 2005~06 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공격적인 경기를 유도한다'는 목적으로 규칙을 개정했다. 골리의 장비 규격에 제한이 생기게 된 유래다. NHL은 골리들의 보호 장비가 너무 커져서 득점이 줄어들었다고 판단, 각종 장비의 크기를 제한했다.

4년을 주기로 규칙을 개정하는 IIHF는 2006년 규칙 개정에서 NHL의 골리 장비 규격 제한을 받아 들였다. NHL에서는 현재 골리 장비의 규격을 더욱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결과에 따라 2010년 밴쿠버 올림픽 후 IIHF의 규정도 바뀌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골리의 성적은 승리와 골 허용율, 세이브율 등으로 평가된다. 유효 슈팅을 막아내는 것을 '세이브'라고 부르는데 보통 경기 당 30개 안팎의 세이브를 기록하고, 세 골 이하를 내주면 수준급의 활약을 펼친 것으로 평가한다.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고 승리하는 셧아웃(완봉)은 골리로서 가장 영예로운 기록이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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