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술의 고장이자 쌀의 본산으로 꼽히는 니가타(新潟)현.
니가타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쯤 나가자 들판 한복판에 우뚝 선 공장 하나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의 종합미곡처리장(RPC)을 닮은 듯 했지만, 자세히 보니 위생 만점의 식품공장이었다.
하루 13톤의 쌀가루를 토해내는 일본 최대의 고급 쌀가루 공장이자 '쌀과의 전쟁' 최전방에 해당하는 곳. '한 수' 배우기 위해 찾은 이웃나라 공무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부상하는 쌀가루
후지 요시후미 공장장은 "특허 받은 기술로 밀가루를 사용했을 때보다 더 뛰어난 품질의 과자와 빵을 생산할 수 있는 쌀가루를 만들고 있다"며 "건강에 더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고가에도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정부지원금을 받아 1998년 설립됐다.
일본의 올해 쌀 생산량은 882만톤. 수요량(842만톤)보다 40만톤 더 생산됐다. 재고도 작년보다 10% 가량 증가한 298만톤(민간과 정부 보유분)에 달한다.
남아도는 쌀 문제에 관한 한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일본은 적지 않은 곳에서 우리와는 선을 긋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R10(Rice Flour 10%)' 운동. '밀가루 10%를 쌀가루로 대체'해 쌀 소비를 촉진하자는 캠페인으로, 니가타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일본 정부도 R10의 확산을 위해 쌀가루의 원료쌀 구매를 지원, 가격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호시 다케시 니가타현 농식품유통국장은 "가공 시설 지원 등 정부 정책 덕분에 니가타의 올해 쌀가루 생산량은 작년보다 12배 급증했다"며 "이 추세라면 쌀가루는 쌀 재고 문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조정제 효과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생산조정제다. 예측된 수요량 만큼 쌀이 생산되도록 하고, 나머지 농지에서는 옥수수 감자 고구마 콩 등 자급률이 낮은 다른 작물로의 전작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시즈카 마사미 농림수산성 식량계획과장은 "강제성은 없지만 조정제에 따라 쌀을 생산하고 나머지 땅에 값싼 다른 작물을 심은 농가에는 차액을 보조금 형식으로 지원한다"며 "덕분에 1970년 720만톤까지 치솟았던 정부 보유 쌀재고량은 올해 86만톤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현재 전체 농경지 중 60%에 주식용 벼를 심고, 나머지엔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하고 있다.
보조금은 작물에 따라 ha당 3만~8만엔(약40만~100만원)이 지급된다. 일본은 이 정책을 통해 ▦쌀 공급량 조절 ▦대체 재배된 작물로 자급률 향상 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보ㆍ환경문제까지 잡아
우리도 이런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휴경 논 ha당 3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쌀 생산 조정제'를 2003년 도입한 바 있지만 휴경 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 하면서 2005년 중단됐다.
농지의 황폐화는 곧 농경지의 소실, 축소를 의미한다. 하지만 일본의 생산조정제는 오히려 농지가 황폐화되는 것을 막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니가타 농정사무소 관계자는 "한번 망가진 농지는 회복이 안 된다"며 "일정 수준의 농지를 유지하기 위해 최근엔 수입이 주식용 쌀의 10%에 불과한 에탄올 생산용 쌀도 90%의 보조금을 줘가며 생산하도록 해 농지의 소실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농지자체를 보존함으로써 식량안보도 지키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이는 일석이조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일본 농수산성이 올해 보조금으로 쓴 금액은 5,618억엔(약 7조5,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20% 수준"이라며 "식량안보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일본의 쌀 수급 정책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ㆍ니가타=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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