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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익 개인전' 원로의 원숙한 화폭, 인간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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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익 개인전' 원로의 원숙한 화폭, 인간을 이야기하다

입력
2009.11.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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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휴머니즘이 사라졌어요. 인간을 너무 파헤친 나머지 조롱과 비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현대미술은 인간을 위하지 않고 그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할 뿐인 것 같아요."

작업실에서 만난 원로 화가 이만익(71)씨는 먼저 안타까움부터 토로했다. 우리 설화와 역사, 시 등을 토속적 색채로 그려온 그는 "한국의 설화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휴머니즘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난 잔인하고 징그럽고 피나고 병들고 죽고 그런 거 안그립니다. 예술은 다 보여주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너무 살벌한 세상이 될 겁니다. 그런 생각으로 최근 몇 년간 휴머니즘을 주제로 작품을 그려왔습니다."

이씨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강남에서 12월 3일부터 20일가지 '휴머니즘 예찬'이라는 제목으로 3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신작 40여 점에 뮤지컬 포스터로 유명한 '명성황후',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로 쓰인 '유화 자매도' 등 구작 2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뚜렷한 윤곽선과 강렬한 색채, 단순한 형태로 소박하고 친근한 내용을 담아내는 화풍은 그의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대신 한국적 소재에서 나아가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셰익스피어의 '햄릿' 등 세계의 문학과 음악까지 그림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신작 하나 하나를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를 만나 '아 그대였던가'를 부르는 소프라노의 표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오는 표범에서는 예술가의 정신을 보았지요. 햄릿을 그릴 때는 나를 그리듯 그렸어요. 내가 젊을 때는 잘생겼거든, 하하하."

그의 작업실은 시집과 문학계간지 등이 꽂힌 책장으로 빙 둘러졌다. 그림을 그릴 때는 좋아하는 시를 왼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 특히 시를 소재로 한 것이 많은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 김소월의 '산', 이육사의 '광야에서' 등 그의 붓을 빌린 명시 여러 편을 만날 수 있다.

이씨가 우리 것을 그리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유학이었다.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후 10년 간 교편을 잡아 모은 돈을 들고 35세의 나이에 떠난 유학길에서 그는 "그리고 지우고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렘브란트, 루오, 반 고흐를 꿈꾸며 서양 미술을 공부했는데 막상 대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나에게는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밤새도록 그리면 그 속에 남의 그림이 들어있었지요. 그래서 생각한 게 우리, 한국인의 모습과 정서였습니다. 1978년이 되어서야 이야기와 양식이 맞아떨어지게 됐어요. 사인이 없어도 내 그림을 알아보게 된 거지요."

요즘 그는 건강이 좋지 않다. "40년 간 피운 산더미 같은 담배"로 얻은 천식에다 예전에 크게 다친 오른발의 상태까지 악화돼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전 10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해 지면 퇴근하는 생활은 변함없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틀에 묶이기 마련이지만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칠십이 넘은 나이에 완전히 새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요. 조금 더 나답고 멋있는 그림을 그리는 게 남은 소망입니다." (02)519-080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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