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땅의 교도관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영화 <집행자> 의 시나리오를 쓰고, 그것을 다시 소설로 낼 때까지 3년여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이 작품을 내 마음 속에서 밀어낼 때가 됐지만, 절대로 내보내서 안 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교도관들의 선한 마음이다. 집행자>
사형집행의 지극한 고통
법을 어기고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이기심으로 뭉쳐진 사람들이다. 그 이기심이 극치에 다다라 타인을 인식하지 못하는 '연쇄 살인마'라 불리는 이들도 함께 숨 쉬는 곳이 교도소이다. 때문에 이런 곳을 천직이라 여기고 일하는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바탕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기심으로 가득 찬 범죄자들의 얼굴을 매일 같이 마주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취재 과정에서 가슴 아팠던 것은 교도관들의 이런 선한 마음을 범죄자들이 조롱하고 협박하고 이용하려고 할 때였다. 교도관들의 갈등과 분노,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이 나에게로 전해졌고 그것은 고스란히 슬픔으로 변해 있었다. 이런 나를 위로해준 것은 이 모든 것을 참아내며 다시 교도소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교도관들이었다. 자신 속에 버티고 있는 선함을 버리지 않는 자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담담하지만 강한 발걸음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영화 <집행자> 로 사형제도에 앞서 사형집행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사형제도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부터 말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이 필요하고, 그러기에는 난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형집행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상황에서는 사형을 당할 범죄자와 그 반대쪽의 피해자, 그리고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 이렇게 사람들만 오롯이 남게 된다. 집행자>
사형을 당할 범죄자와 피해자 부분에 대한 생각과 마음은 영화 <집행자> 에서 전미선씨가 한 역할에서, 소설에서는 윤선의 목소리로 어느 정도 표현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이다. 다른 어떤 직업에서든, 어떤 경우이든 사람의 목에 밧줄을 걸어 죽이라는 합법적 명령을 받는 데는 없다. 교도관을 빼고는. 집행자>
사형집행에 참여한 교도관 한 분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형집행 당시 상황에 대한 질문에 고통과 슬픔이 응어리진 눈빛과 함께 침묵으로 일관 하시던 그 분. 차마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침묵이 극한의 고통을 가진 이가 내지르는 비명임을 직감했다. 직업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집행하도록 강요당한 이들의 고통을 단 한번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다면, 누구도 그것을 요구할 수 없을 것이다. 사형을 집행한, 또는 집행할 교도관들의 고통을 외면하고서는 절대로 사형제도를 논해서는 안 된다.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13명을 무참히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던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사형 집행이 두려워' 자살하면서 다시 사형제도 논란이 불거졌다. 마침 30일은 '세계 사형 반대의 날'이다. 천주교 서울교구가 이날 사형폐지 기원 미사와 함께 사형집행에 참가한 전직 교도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한 것도 사형제도에서 잊어서는 안될 사람의 고통을 확인하자는 뜻일 것이다.
선한 마음이 악을 누른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이기적인 사회다. 이기적인 사회는 이기적 범죄자들이 쑥쑥 자라날 수 있게 기름진 토양을 제공한다. 누구도 이런 사회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교도관들은 선한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감히 누가 선함을 지키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사람을 죽일 것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선한 개인을 지켜 주지 못하는 사회는 악이 날개를 친다.
김영옥 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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