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벌어진 어깨를 양쪽으로 살짝 흔들며 타석에서 리듬을 타던 선수. 양팔을 벌린 채 빠르게 휘저으며 그라운드를 질주하던 선수. 1983년 신인왕인 박종훈(50) LG 감독 만의 독특한 포즈였다.
프로야구 SK의 마무리훈련이 한창인 일본 고치현의 고치시민구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외야수 박윤(21)의 훈련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박 감독이 부활한 듯했다. 아버지보다 약간 큰 '사이즈'의 체형(181㎝ 90kg)부터 타격, 주루, 송구까지 완벽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OB 감독으로, SK 감독으로 둘을 모두 지도했던 김성근 SK 감독조차 혀를 내둘렀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라 아버지의 경기 모습을 못 봤는데 주변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하세요. 신기하죠."
지난 2006년 2차 5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은 박윤은 SK 수석코치로 있던 아버지와 처음으로 프로 무대에서 함께 했다. 그러나 부자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 감독은 2007년 두산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박윤은 그 해 말 상무에 입대했다. 지난달 22일 제대에 앞서 박윤은 기쁜 소식을 접했다. 아버지가 꿈에 그리던 프로야구 1군 감독이 됐다는 것. "저도 결정됐을 때서야 소식을 들었죠. 친구들한테 축하 전화도 많이 받았어요. 2군 감독은 오래 하셨지만 1군 감독이랑은 다르잖아요."
박윤이 기억하는 박 감독은 자상한 아버지, 그러나 유니폼을 입었을 땐 가장 무서운 선배였다. "어려서부터 한번도 집에서는 꾸중을 한 기억이 없어요. 하지만 유니폼을 입고 계실 땐 엄하셨죠."
아버지는 진주에서 한달 여 간의 마무리훈련을 마쳤지만, 박윤은 12월 말까지 '지옥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군대에 다녀온 뒤 부쩍 성장했다는 게 김성근 감독의 평가. 올시즌 치열한 경쟁을 뚫고 1군 무대에 서기 위해 박윤은 오전 8시부터 야간훈련까지 이를 악물며 소화하고 있다.
박 감독은 12월 재활조를 이끌고 사이판으로 떠날 예정이어서 부자가 상봉하는 날은 연말이나 돼야 한다. "1군에 올라가 LG와 만나면 재미있겠죠. 아버지에게 절대 지지 않을 거고요."
서로 훈련에 바빠 가끔 전화 통화를 한다는 박윤은 아버지에게 쑥스러워 아꼈던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아버지, 생각하셨던 야구 마음껏 펼치시고요, 저도 제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아버지께 인정받는 야구 선수가 될게요."
고치(일본 고치현)=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