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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말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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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말의 혼란

입력
2009.11.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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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毛澤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공산주의 국가만 아니라 후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총구는 권력의 탄생과 유지, 지도력의 원천이었다. 노동당 국방위원장이 정치권력의 정점인 북한 체제가 그 전형이지만, 한국도 5공 때까지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해체 이후 비로소 국민은 군사 쿠데타 위협에서 자유로워졌다. 그 뒤 한국의 정치권력은 선거가 만들고, 헌법과 법률이 지켰다. 그리고 지도력은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주로 말의 힘을 통해 발휘됐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언력(言力), 즉 말의 힘이 얼마나 지도력을 좌우하는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분명하게 확인시켰다. 주로 말의 품격이 자주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노 전 대통령은 그때마다 즉흥적 반발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말의 힘, 거꾸로 말의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먼저 깨달은 것은 가까이서 이를 지켜본 민주당과 진보 세력이었던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정부 공세에는 늘 '딱지 붙이기'가 앞섰다. '광우병 쇠고기'를 시작으로 'MB 악법''부자 감세' '언론 장악' 등의 말 딱지가 난무했다.

■실체적 내용을 따지지 않는 일방적 성격 규정은 고정관념을 심는다는 점에서 고도의 정치 전술이다. 일단 딱지가 붙으면 좀처럼 떼기 어렵다. 그 위력을 절감했는지, 정부ㆍ여당도 어느새 대통령부터 딱지 붙이기에 동참했다. 지난주 말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선 이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와 관련, '원안'과 '수도 분할'을 언급했다. '원안'에는 행정부처 이전만 담겼고, 행정부처 일부 이전은 곧바로 '수도 분할'에 해당하는 것처럼 말했다. 법문상 현재 거론되는 자족기능 확충방안 대부분이 당연히 '원안'에 포함되는 것임을 모른 척했다.

■여당 내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쓰고 있는 '수도 분할'이란 성격 규정도 헌법재판소가 2005년 결정에서 배척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 딱지를 동원한 결과, 마치 '행정부처 몇몇만 있는 텅 빈 도시냐, 기업을 비롯한 자족기능과 일자리가 넘치는 도시냐'의 선택이 국민 눈앞에 놓인 듯한 허상을 만들었다. 적어도 이 대통령은 '행정부처 몇몇과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냐, 행정부처 대신 다른 자족기능을 추가한 도시냐'는 정확한 물음을 던지길 기대했다. 말의 혼란을 걷어내는 것보다 중요한 지도자의 덕목도 많지 않으리란 생각에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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