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에 쏙 넣고 우물거리면 사라지는 운을 타고난 녀석들. 맛을 음미하되 녀석들의 생김새까지 눈여겨보는 이는 많지 않다. 대저 외모와 성형이 인간사회의 경쟁력이 된 마당이니 과자세상에서도 특이한 풍모를 지닌 녀석들은 할말이 있을 터. 맛은 기본이고 과학과 노력, 몰입이 스며든 외모가 장수의 비결이란다.
과자는 본디 밀가루나 쌀가루에 설탕 우유 따위를 섞어 굽거나 기름에 튀겨 만든 음식. 그 이치(제조과정)를 뒤틀고 벗어나야 비로소 신기한 과자가 탄생하는 법이다. 각 업체의 대표 장수과자들이 그대에게 성형의 비법을 속삭인다. 기왕이면 녀석들을 맛보면서 들으시라.
오리온 오징어땅콩, "반죽두께가 0.1㎜라도 벗어나면?"
저는 1976년생입니다. 어떻게 동글동글 딱딱한 외피 안에 고소한 땅콩을 고이 품을 수 있는지 궁금하시죠. 반죽의 두께와 온도 및 습도가 생명입니다. 먼저 땅콩을 볶은 후 텀블러(뱅글뱅글 돌아가는 뻥튀기 기계를 떠올리면 됨) 안에 넣어요. 약간 끈적이는 반죽(당+전분+밀가루)으로 땅콩을 동그랗게 감싸죠.
반죽이 0.1㎜라도 두껍거나 얇으면 구울 때 과자가 부풀어오르지 않아요. 최적의 반죽두께가 모든 걸 좌우하는 셈이죠. 다른 과자는 섭씨 18~25도, 습도 45~55% 정도만 되면 만들 수 있지만 저는 온도 20도, 습도 60%의 기준을 꼭 지켜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무르거나 딱딱해지거든요.
그래서 유독 손이 많이 갑니다. 원료배합과 제작조건이 남달라서 인원이 다른 과자에 비해 5배 이상 더 필요합니다. 코팅도 3단계(반죽→오징어가루→양념)거든요. 반죽을 입은 땅콩 알맹이들은 180~210도의 오븐을 통과하면서 동그랗게 부풀어 오릅니다. 잘게 자른 오징어가루와 양념을 묻히면 완성이 되는 거죠. 제값이 다른 녀석들보다 살짝 비싼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동생인 포카칩(88년 출시)은 어찌 그리 얇을까요. 세탁기 원리를 이용한 덕입니다. 세탁기의 원통처럼 생긴 틀 안쪽에 세로로 칼날을 심는 거죠. 틀 안에 들어간 감자들은 분당 250회나 회전하는 틀의 원심력에 의해 안쪽 구석으로 몰리는 찰나 칼날에 썰어져 나갑니다. 참고로 물결무늬 감자스낵(스윙칩)은 물결무늬 칼날을 이용한 거랍니다.
해태제과 홈런볼, "주사를 맞아야 완성!"
어느덧 서른 즈음(81년 출시)이네요. 국내 유일의 오리지널 슈크림 제품이란 명성은 여전합니다. 저의 외모를 질시해 수많은 짝퉁(모조품 또는 유사품)이 판을 쳤지만 모두 성형실패의 부작용만 안고 사라졌습니다. 당시 1억원이 넘는 개발비를 1년간 쏟아 부어 순수 우리기술로 만든 저를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죠.
솜털구름마냥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용모의 비밀은 시간입니다. 밀가루 계란 등을 얼마나 숙성하느냐에 따라 과자의 촉감과 수분, 색깔이 좌우되거든요. 구슬보다 작은 재료는 오븐에서 구워지면서 특유의 모습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주사도 맞습니다. 자연 냉각한 과자에 인젝트 충진기(일종의 주사기)로 정교하게 초콜릿을 짜 넣어주거든요. 모방이 힘든 탓에 제 이름처럼 시장에서 홈런을 날리고 있답니다.
롯데제과 꼬깔콘, "잘 겹쳐져야 효자!"
올해 26세인 저를 한번쯤은 손가락 끝에 살짝 끼워봤을 겁니다. 더러 열손가락에 끼워 놀이도 하고 자랑도 하는 아이들이 있답니다. 매년 매출이 늘어나는 바람에 효자 소리를 톡톡히 듣습니다.
고깔 모자를 닮은 재미난 생김새는 반죽 겹치기 기법을 사용합니다. 우선 옥수수 가루를 물과 함께 삶아 떡처럼 말랑말랑한 상태(반죽)로 만듭니다. 반죽은 롤러로 눌러 납작하게 만들죠. 얇게 펴진 반죽 두 개를 포갠 다음 삼각형 틀로 찍고, 말려서 기름에 튀겨내는 거죠.
농심 새우깡, "기름이 아니라 소금에 튀겨요."
불혹에 접어든 저는 명실상부한 국내 스낵의 원조지요. 71년 제가 세상을 나왔을 때 어찌나 인기가 많았던지 전남 해남 땅끝에 사는 과자가게 아저씨가 상경해서 사갈 정도였다고 하네요. 당시만 해도 귀하던 새우를 과자로 만들기 위해 연구원들은 기계 옆에 가마니를 깔고 자면서 저를 탄생시켰대요. 개발에 사용된 밀가루만 4.5톤 트럭 80대 분이었다고 해요.
몰입의 결정판은 파칭(Parching)이라 부르는 튀김 기법입니다. 보통 과자는 끓는 기름에 튀겨내는데 저는 소금(신안군 천일염)에 튀기거든요. 쌀겨로 만든 미강유(米糠油)를 살짝 얹어 가열한 소금의 열을 이용해 튀겨내기 때문에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제대로 살아납니다. 독특한 기술(파칭)은 저만의 자랑입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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