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남준의 미디어 비평] 종편채널 새 선정기준 만들어야 '승자의 저주' 가능성 줄어든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남준의 미디어 비평] 종편채널 새 선정기준 만들어야 '승자의 저주' 가능성 줄어든다

입력
2009.11.26 23:38
0 0

철수와 영희에게 어머니가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어머니 생각에는 똑 같이 나누었다고 하지만 영희는 "오빠만 예뻐해", 철수는 "딸만 더 좋아해"라며 어떻게 나누어도 불만이다. 이때 이 케이크를 철수에게 나누라고 하고, 먼저 고를 선택권은 영희에게 주면 철수는 자기가 나중에 갖게 되니 최선을 다해 공평하게 나누려 애쓸 것이고 영희는 먼저 선택을 하게 되니 어떠한 경우에라도 둘 다 만족해 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로 200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릭 매스킨이 자신의 '구조설계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서 든 예다. 구조설계 이론은 경제학 게임이론의 한 분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주체를 잘 설득해 공적 이익을 달성하는 구조적 장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특정 경제행위에 대해 가장 정보를 많이 가진 당사자는 경제행위 주체이지 이 행위에 대한 공적 설계자는 아니다.

하지만 경제주체는 자신들의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는데, 앞에서 든 케이크 분배 예처럼 제도만 잘 만들어 운영하면 실질적 정보가 없는 설계자도 충분히 공적 이익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좀 추상적으로 말해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계획자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경제주체들을 상대로 선정 게임을 설계할 때, 그 게임의 결과를 계획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보통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은 서로 상충한다고 설명하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두 이익이 상호 조화 될 수 있는, 매스킨의 말대로 '병행(in line with)'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지금은 원유 값이 올라 충분히 채산성이 있지만 1960년대 미국 남부 멕시코만 지역의 해양원유 채굴은 당시 큰 돈을 들여 채굴권을 매입한 회사들에게 커다란 손실을 안겨주었다. 경쟁이 심했던 채굴권 경매에서 높은 금액을 써내 당첨되었지만 실제 생산되는 원유량이 적어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이러한 현상을 일반적으로 '승자의 저주'라고 한다.

방송ㆍ뉴미디어 분야에서도 사업자를 공개경쟁을 통해 선정할 경우 '승자의 저주'는 자주 발생한다. 뉴질랜드의 방송사업권 경매, 호주의 위성방송 허가권 경매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케이블 PP사업자, 위성방송, DMB 사업자 등의 선정 결과에 일부 적용된다. '승자의 저주'는 선정자, 선정 대상자 모두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경쟁에서 이긴 당사자가 가장 큰 폭으로 기대이익을 과대평가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사업의 실질가치를 잘 모를 경우에는 사안의 본질상 '승자의 저주'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언론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자 서둘러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을 위한 기획팀을 꾸렸다. 내년 1월쯤 종편 선정 기준 등 구체적 정책방안이 나올 것이라 한다. 하지만 방송계에서는 심사기준과 관련해 예전에 우려먹었던 공익성 실현, 프로그램 제작 수급능력, 재정 능력, 경영계획, 방송시설 구축, 방송발전 기여계획 등이 이번에도 그대로 준용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구조설계 이론에 의하면 방통위가 추구하는 종편채널의 공익적 목표와 종편사업자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사적 이익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사업자 선정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방통위는 구태의연한 선정 기준, 선정 절차 등을 버리고 좀 더 큰 안목으로 방송계 내부의 의견뿐만 아니라 외부 전문가의 견해도 수렴해 새로운 기준과 선정절차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종편채널이 또 다시 승자의 저주가 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강남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