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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영화음악은 또다른 등장인물

입력
2009.11.2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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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는 스크린 밖에서도 욕설과 독설을 서슴지 않는 악동 감독이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도 그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스터클래스'는 거장들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역설하는 일종의 공개 강의. 남들 같으면 품위를 따질 만도 한데 타란티노는 '뭐 별거냐'는 표정으로 자유분방한 언변을 구사했다. 특히 영화음악 감독들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낼 때는 'Bull Shit'(소 똥, 엉터리) 등 다소 천박한 단어를 섞으며 흥분했다.

그는 "음악감독들이 내 영화에 X칠을 했다"고 했고 "나는 미국에서 영화음악을 가장 잘 고르는 사람"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음악에 대해 날 선 태도를 지닌 그도 최근 개봉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음악을 위해 세계적인 영화음악 감독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오래도록 공을 들였다.

때론, 아니 자주 영화는 음악으로 기억된다. 필름이 소리를 간직하지 못했던 무성영화시대에도 영화는 음악과 함께 상영됐다. 훌륭한 영화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는 등장인물의 심리와,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품은 공기의 질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가 극장을 물러난 뒤에 여러 장면들은 음악을 통해 다시 관객의 뇌리로 소환된다. 많은 감독들이 음악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다.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리스 출신의 명감독 코스타 가브라스는 아예 "음악은 등장인물 중 하나"라고 정의했다. "관객의 감수성을 가장 많이 건드리는 것은 바로 음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토록 중요한 요소로 꼽히지만 충무로에서 음악은 아직도 부수적인 그 무엇으로 인식되고 있나 보다. 2000년대 산업화의 물결을 타면서 대우가 달라졌다고 하나 고막이 괴로울 때가 종종 있다. 최근의 한국영화, 특히 코미디에서 정체와 퇴보가 눈에 띈다.

이미 관객과 만난 '킬미'와 '청담보살', 26일 개봉하는 '홍길동의 후예'에서 음악은 체면치레 수준의 '효과음'에 그친다. 예측 가능한 음이, 귀에 익숙한 음이 천연덕스럽게 흘러나온다. 장면이나 대사에만 진부함이 있진 않다. 제 아무리 재치만점이라고 제작진이 자부할 대사와 상황설정으로 무장해도 음악이 지루하면 곧잘 하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지난 주말 SBS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의 인기코너 '패밀리가 떴다'에선 '마지막 황제'(1987)의 '레인(Rain)' 등 귀에 익은 영화음악들이 시청자들을 웃기는 데 한 몫 했다. 좋은 영화음악은 생명이 참 길기도 하다. 그 음악을 담은 영화의 생명력은 새삼 또 말해서 무엇하랴.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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