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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 사냥 현장 따라가 보니…"멧돼지 잡아라" 농촌은 지금 반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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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 사냥 현장 따라가 보니…"멧돼지 잡아라" 농촌은 지금 반격 중

입력
2009.11.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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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8시 경북 성주군 선남면 용신리의 한 야산 자락에 4륜구동 차량들이 줄지어 몰려들었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모두 얼룩덜룩한 위장복 차림에 구경 12㎜ 엽총을 메고 허리에는 탄대를 둘렀다.

한국야생동물보호관리협회 대구ㆍ경북지부 성주지회(회장 신동우) 소속 엽사(獵師)들이다. 취미로 사냥을 즐기면서, 농작물을 망치는 '유해조수' 구제 활동도 벌이는 이들이다.

이날의 사냥감은 요즘 '유해동물 1호'로 꼽히는 멧돼지다. 멧돼지들이 최근 도심 한복판에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하는 일이 잦지만, 특히 농촌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공공의 적'이 돼왔다. 지난해 경북 전체에서 신고된 멧돼지 농작물 피해 규모만 12억원. 성주군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벽진면의 김모(70)씨는 지난달 중순 산 아래 있는 논에 벼를 베러 갔다가 3,500여㎡ 논 전체가 쑥대밭이 돼 있는 걸 발견했다.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친 그는 "멧돼지가 자주 출몰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며 한숨만 쉬었다. 농작물만이 아니다. 올 3월에는 초전면 용봉리에서 주민 조모(55ㆍ여)씨가 새벽 운동을 하다 멧돼지 습격을 받고 넘어져 척추를 다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이달 1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전국 19개 시ㆍ군 수렵장에서 당초 계획보다 3배 가까이 많은 2만마리의 멧돼지를 잡을 수 있도록 했다. 1인당 포획가능 수도 2마리에서 6마리로 늘렸다.

총기소지 허가를 받은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일정액의 사용료를 내고 멧돼지, 고라니, 꿩, 까치, 청설모 등 10종의 야생동물을 정해진 한도 내에서 잡을 수 있다. 특히 멧돼지는 5월경에 10마리 내외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겨울철에 암컷 1마리를 제거하는 것이 '유해조수' 구제 효과가 크다.

이날 사냥터인 용신리 야산은 해발 300m가 채 되지 않아 보였다. '과연 이런 곳에 멧돼지가 살까.' 그러나 걱정은 곧 기우로 드러났다. 산기슭 논밭에서 등산로 주변에 이르기까지 멧돼지 발자국과 파헤친 흔적이 널려 있었다. 김기상(55)씨는 "깊은 산은 물론 동네 야산에도 없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사냥에는 최해석(45)씨가 데리고 온 사냥개 7마리도 합세했다. 한 마리에 수백만원짜리들이다. 최씨는 "사냥개가 사냥의 70∼80%를 한다고 보면 된다"고 귀뜸했다.

사냥의 첫 순서는 수색 정찰. 베테랑 엽사들은 멧돼지 발자국만 봐도 얼마 전에 이곳을 지나갔는지 알 수 있다. 신동우(53) 회장은 "발자국의 건조 상태와 거미줄의 유무, 풀이 짓눌린 상태 등으로 시기를 알아낸다"고 말했다. 1시간여 정찰 결과, 이날 새벽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을 발견했다. 크고 작은 것이 섞인 것으로 보아 새끼가 딸린 어미로 추정됐다.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됐다. 무전기를 든 6명의 엽사들은 역할을 나눠 포진했다. 최씨 등 2명의 '몰이조'는 반대편 기슭에 사냥개 7마리를 풀었다. '저지조' 3명은 멧돼지가 튀어나올 길목에 엽총을 겨눈 채 대기했다. 순찰을 맡은 나머지 1명은 흥분한 사냥개가 가축을 물어 죽이는 일이 없도록 살폈다.

몰이는 초보자에겐 힘겨웠다. 낙엽이 무릎까지 쌓이고 가시덤불이 무성한 급경사를 뛰어 오르는 일만 해도 숨이 턱에 찼다. 무릎 아래는 금세 상처 투성이가 됐다. 몰이를 시작한 지 30여분.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는 등 사냥개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순간 숲 속에서 검은 물체가 후다닥 튀어 나갔다. 어미 한 마리와 새끼 세 마리였다.

탕 탕 탕 탕! 최씨는 달아나는 멧돼지를 향해 4발을 쏘았지만 빗나갔다. 개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추격을 시작했다. 그 중 한 마리가 새끼 하나를 물었지만 갑자기 검은 물체가 휙 날아 오더니 개를 밀어 제쳤다. 어미였다. 그 사이 새끼는 쏜살같이 달아났다.

뒤에 처진 최씨는 GPS 수신기를 살폈다. 리더 격인 '레드' 등 사냥개 3마리에는 위치추적용 발신기가 달려 있다. 갑자기 레드의 움직임이 멈췄다. 380m 전방이다. 조심스레 접근하니 대나무숲 속에 레드가 새끼 멧돼지를 몰아넣고 있었다. 최씨는 총 대신 사냥칼로 새끼를 제압했다.

멧돼지는 매우 영리하다. 8, 9부 능선 시야가 탁 트이고 도주하기 좋은 곳에 은신처를 두고, 근처에 어지럽게 발자국을 찍고 배설물이 흩어 놓아 위장한다고 한다. 신 회장은 "물을 건널 때도 지그재그로 움직여 혼란에 빠뜨리고, 밭을 습격할 때도 어미는 숲에서 망을 볼 정도로 꾀가 많다"고 전했다. 몸무게 300㎏ 안팎의 '대물'들을 잡고 보면 온 몸에 납탄이 박힌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장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사냥에 나섰지만, 3시간여의 추적은 허탕으로 끝났다. 이날 수확은 새끼 한마리. 엽사들은 다음 번 사냥을 기약하고 산을 내려왔다.

엽사들은 사냥의 재미로 "낚시꾼의 손맛처럼 '샷' 하는 순간의 스릴과 희열"을 꼽았다. 그만큼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신 회장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처음부터 노련한 엽사로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성주=정광진 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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