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는 유독 조각 전시가 많다. 돌과 철이라는 각기 다른 재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파고드는 조각가 박은선(44)씨와 최태훈(44)씨의 전시가 눈길을 끈다.
대리석으로 만드는 동양적 추상
박은선씨는 1993년 이탈리아로 간 뒤 유명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 인근의 피에트라산타에서 작업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부터 헨리 무어, 마리노 마리니까지 수많은 대가들이 작업했던 이곳에서 그의 기하학적 조각은 '동양적 추상조각'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2007년에는 피에트라산타시 초청으로 대규모 야외 조각전을 갖기도 했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박씨의 개인전에는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25점이 나와 그의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필 수 있다. 선화랑이 제정한 제21회 선미술상 수상 기념전이다. 둥근 구들이 증식하듯 반복되거나, 얇게 절단된 두 가지 색깔의 대리석들이 차례로 쌓아올려진 그의 작품은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누구나 출세하거나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나 역시 작업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짐을 느낀다. 그런 욕망을 무한기둥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조각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대리석 사이의 균열이다. 그는 "금이 가 갈라진 틈은 살아있는 조각을 만드는 숨통"이라고 말했다. 27일까지. (02)734-0458
빛을 담아내는 철
최태훈씨는 나무 사이로 강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작품 속으로 가져오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택한 방법은 철에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조각을 만든 뒤 금속을 절단하는 플라즈마 기계를 데생하듯 빠르게 움직여 무수한 구멍을 내고, 그 내부에 LED 조명을 설치해 빛이 새어 나오도록 한 것이다. 최씨는 "내 작업을 보고 철을 학대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구멍이 뚫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 철은 생명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5일부터 인사동 갤러리아트싸이드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최씨는 그간의 추상적인 대형 작업과는 다른, 일상적 사물을 소재로 한 작업을 선보인다. 자동차, 소파와 침대, 술병, 재떨이, 변기 등을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소재는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용접과 구멍뚫기라는 과정을 거친 결과물들은 상당히 낯설다. 특히 작품을 뚫고 나오는 내부 조명과 전시장 전체를 비추는 외부 조명이 엇갈린 채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은 그의 조각을 더욱 부각시킨다. 12월 8일까지. (02)725-1020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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