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과반득표 미달과 선거부정 논란에도 불구, 경쟁자의 포기로 결선투표 없이 재선에 이른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19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취임식을 갖고 집권 2기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과 함께 '대 탈레반' 전쟁을 치러왔지만 재선 과정에서 정통성에 흠집이 생겨 향후 5년 동안의 아프간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과연 서방의 요구대로 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나아가 반군과의 전쟁을 조기 종식할 수 있을지에 세계의 이목은 집중돼 있다.
철통보안 속 취임식
취임식은 물샐 틈 없는 경호 아래 진행됐다. 아프간 정부는 테러를 우려, 행사 당일 아침까지 정확한 일정을 공개하지 않았고 로켓 공격을 겁내 실내에서 취임식을 진행했다. 당국은 카불의 모든 관공서와 기업에 휴업을 요청했으며 응급상황을 제외하고 차량은 물론 도보이동도 피하라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카불 인근에 주둔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군 병사들도 취임식 경비를 위해 집결, 민간인의 통행이 멈춘 시내는 테러경계 병력으로 가득 채워졌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초록색 줄무늬 예복을 입은 카르자이 대통령은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등 42개국 외교사절 3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부정부패는 아프간의 위험한 적"이라며 "부정을 저지르는 공무원은 반드시 기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르자이는 이어 "5년 안에 국내 치안을 자체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힘을 키우겠다"며 "아프간 내 테러는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르자이는 또한 대선 경쟁자였던 압둘라 압둘라 후보를 수용할 수 있음을 밝혔고, 탈레반과의 화해 모색을 위한 부족장회의 소집을 촉구했다.
부패 단절 여부가 관건
재선 임기를 시작하는 카르자이에게 가장 큰 위협은 탈레반 무장세력이 아니다. 경찰 하부조직부터 내각 중심부에까지 만연해 있는 부패야말로 가장 두려운 적이다. 부정선거로 자칫 재선이 위험할 뻔 했던 그에게 '아프간 정부= 부정부패'란 등식은 자신의 집권안정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기도 하다. 18일 카불에 도착한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아프간 정부에서 부패가 척결되고, 파트너(아프간 정부)가 강해져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카르자이를 은근히 압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 인터넷 판에서 "부정으로 얼룩진 카르자이가 과연 임기를 잘 마칠 수 있을지 미국은 물론 아프간 관리들도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며 "카르자이는 아프간 국민과 서구로부터 끊임없이 부패척결의 요구를 듣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카르자이는 우선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동지'들을 솎아내는 선택을 해야 한다. 카르자이의 측근인 파잘 아짐 무자다디 바닥샨 주의회 의원은 NYT와 인터뷰에서 "각료, 경찰고위층 가운데 85~90%는 교체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현직 아프간 광업장관의 뇌물 스캔들이 터져 카르자이는 집권2기 초입부터 국제사회의 의심에 찬 시선을 받게 됐다. AP통신은 19일 무하마드 이브라힘 아델 광업장관이 2007년 중국 광산 업체로부터 약 2,000만 달러를 받고 구리 광산을 넘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도 '출구전략'
카르자이의 집권 2기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아프간 전략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에 이어 아프간 전쟁의 '출구전략'에 시동을 건 것이다. 외신들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9월부터 끌어온 병력 증파규모 결정을 수 주안에 끝냄과 동시에 아프간 전쟁 종료 방안, 즉 '출구전략'을 공개할 것이란 보도를 내놓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대통령에게 (아프간 전쟁과 관련된) 어떤 것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출구전략에 대한 미 정부의 첫 공식적 입장표명이다. 19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발언에 대해 "임기 종료 전 아프간에서 미군을 완전히 빼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출구전략'검토를 시작한 미국은 일단 비생산적인 '대 탈레반'전쟁에 몰입하는 대신 테러 집단인 알 카에다를 응징하는 쪽에 힘을 집중하고, 동시에 탈레반 인사들에겐 아프간 내각의 문을 열어놓는 전략을 펼칠 전망이다. 또한 미군과 나토군은 궁극적으로 아프간 정부의 자체 치안력 확보를 돕는 한편 병력 증강을 통한 압박 공세도 함께 펼칠 것으로 보인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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